받아들이는 삶
인터뷰 중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 ㅈ같은 새끼들’이라고 말하는 할머니를 보았다. 그들은 틀림없이 'ㅈ같은 새끼들’ 일 것이다. 할머니의 욕을 돌림노래처럼 따라 내뱉었다. ‘ ㅈ같은 새끼들’
나는 정말로 욕 한마디 못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욕을 하기 시작했고 결혼 후 실력이 일취월장된 타입이다. 하지만 저렇게 만인 앞에서 내뱉을 정도는 못되고 주로 혼자 있을 때, 탄식처럼 뱉어낸다.
TV 채널을 돌리다 무서운 장면을 목격하며 ‘엄마야 18’, 창가의 에어컨 실외기 위에 갑자기 날아든 까마귀를 보고 놀라서 ‘아우! 18 깜짝이야’, 운전 중 고약한 운전자를 만나면 우렁차게 ‘야이 이 X새끼야!! 운전 아주 거지같이 하네!’
그렇지만 나는 좀 얌전하게 생겼다.(물론 이것은 내 의견이다) 이렇게 마른기침이 터져 나오듯 욕을 내뱉는 사람같이 보이진 않는다는 말이다.(물론 이것도 내 의견이다) 그래서 언젠가 이 현장을 들키고 말 것이라는 불안감을 살짝 가지고 있다.
‘종 같은 새끼들’이라 말하는 대찬 할머니도 좋지만, ‘어머, 세상에 저 할머니는 젊을 때 고생 한 번 안 해 봤을 것 같아’라고 수군거리게 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세상 풍파가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서 무릎 위에 으르렁거리는 몰티즈를 쓰다듬으며 흔들의자에서 흔들거리고 싶었다.
그런데 안될 것 같다. 그러기엔 비밀이 많이 생겨버렸다. 비밀이 하나씩, 둘씩 쌓일 때마다 눈빛은 공허해지고 가슴은 답답해졌다. 욕이 튀어나온다. 내뱉는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닌데도 배설 욕구는 그치지 않는다. 대나무 숲이나 가볼까.
비밀이 속을 전부 까뒤집어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사실 비밀 자체보다 이것이 더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터놓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 사람을 원하면서도 거부하는 내 오랜 습성을 나는 버리지 못한다.
나무가 건강한지의 여부는 마흔 살이 되어야 비로소 알 수 있다고 한다. 사람도 비슷하지 않을까? 마흔 살 정도가 되면 내가 어떤 인간인지 서서히 드러나는 것 같다. 크게 흔들리는 일을 겪더라도 그동안 뿌리에 영양분과 수분을 차곡차곡 쌓아놨다면 잘 버틸 것이다.
그동안 쌓아 올린 것들이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아서 나는 당황했다. 욕 좀 내뱉을 줄 아는 잡초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온실 속 화초임을 확인했을 땐 거의 패닉 상태였다. 치욕과 부정을 오가다가 그냥 온실 속 화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잡초면 어떻고 온실 속 화초면 어떠냐.
내가 되고 싶은 고운 할머니는 가슴속에 말할 수 없는 비밀들을 품고도 그것에 짓눌리지 않는 사람이다. 비밀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녀에게 비밀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산전수전을 다 잊고 평안하게 몰티즈를 쓰다듬는 것에만 집중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