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비 Jan 18. 2023

늙어도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집

간결하게 살고 싶다.

한때 인간극장을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 타인의 삶을 낱낱이 지켜보는 게 좀 진저리 났다고 해야 할까.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알아버리고 싶지가 않았다. 요즘은 EBS 채널의 ‘건축탐구 집’ 같은 프로그램이 좋다. 집구경도 하면서 사람 구경도 할 수 있다.   

  

최근에 본 집은 내 취향에 거의 부합되는 집이었는데 흥미로웠던 것은 부부의 침실 입구 쪽 벽을 통유리로 작업한 것이었다. 부부는 어린이 둘을 기르고 있는 젊은 부부인데 그렇게 침실을 만천하에 오픈한 것은 이제 성생활은 끝났다는 것을 숨기지 않겠다는 의도 아닐까?(물론 100% 내 추측)


사람들은 부부가 섹스를 하지 않으면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발생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이 ‘우리는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좀 통쾌했다.      


인간은 무엇으로든 드러나게 되어있다. 거리에서 스쳐 가는 사람의 체형만 봐도 그가 대강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다.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서 솟아있는 사람을 보면 그가 평소에 긴장을 많이 타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라고 추측한다.(내가 딱 그렇기 때문)


그런 어깨는 중년 남자에게서 많이 발견되는데 웬만해선 그들에게서 측은함을 느끼지 않지만 그 순간만은 짠해진다. 그 성격에 애쓰며 살았구나 싶다.  

   

집이야말로 그 사람의 성격, 현재의 상태, 지향하는 가치를 가장 쉽고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TV에서 혼자 사는 청년들을 볼 때마다 김미수가 서울에서 혼자 살았던 방을 생각한다. 살림살이들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쌓여있었고 햇빛이 들지 않았음에도 달아놓았던 암막 커튼은 친구가 스스로 고립되기를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 타향살이를 해본 적이 없는 나는 그 방에 들어서자마자 외로움에 짓눌렀던 것 같다. 얼마나 외롭고 지치고 힘든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줄곧 간결하게 살고 싶었다. 비누 하나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어서 클렌징 오일, 클렌징 폼, 샴푸, 컨디셔너, 샤워젤을 사지 않는다. 냉장고가 있어서 김치냉장고가 필요 없고 건조대와 있어서 건조기가 필요 없는 그런 사람이다. 물건을 쌓아두고 살까 봐 일부러 수납장도 짜 넣지 않았다.      


이 집을 정말 좋아했다. 비로소 내 집을 찾은 기분이었다. 낡고 오래된 집이었지만 반질반질하게 윤을 내고 살았다. 하지만 이제 이 집은 나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크다. 둘이었을 때 좋았던 집이다.


그렇게 이사를 결심하고 보니 쓸데없는 물건들이 곳곳에 보였다. 집착을 내려놓고 물건을 버리려면 평생 못 버릴지 모른다. 나는 우선 물건을 버리고 집착을 내려놓는 방법을 선택했다.      


버리기엔 아까운 살림살이들을 당근마켓에 팔았다. 예쁘지만 불편해서 신을 수 없었던 구두들, 새것이지만 묘하게 촌스러워진 옷들, 남편에게서 받은 선물들, 더 이상 읽지 않는 책들, 한때는 예쁘다고 사모은 인테리어 소품들을 모조리 버렸다.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진 것이 많았다. 그동안 흉내만 내고 살았구나.

    

80세 노인이 되어도 하루 만에 집안을 정리하고 세상을 뜰 수 있을 정도의 살림살이만 유지하고 싶다. 늙더라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청소하고 관리할 수 있을 정도의 아담하고 따뜻한 집, 감당할 수 있을 정도만 가지고 싶다. 요즘 계속 그런 생각을 한다.


이제야 삶의 방향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 조금 보이는 것 같다. 간결하고 아담하고 따뜻한 집. 그런 집에서 평생 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