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구 청학동->조내기 고구마 역사 기념관 ->복천사
영도에 갈 땐 무조건 버스를 탄다. 해운대에서 1011번 버스를 타고 광안대교와 부산항대교를 건너면 시티투어 버스를 탄 적은 없지만 마치 시티투어 버스를 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영도에서 해운대로 가는 부산항대교 진입로는 400M의 거리를 360도 회전하며 올라가는 구조로 도로 폭이 좁고 가드레일마저 낮아서 사방으로 시야가 트여있다. 그 덕에 도로를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기둥을 보며 자신이 얼마나 높이 있는지 절로 알게 된다. 나는 그곳을 운전한 적이 딱 한 번 있다.
아차 하는 순간 아래에 펼쳐진 시커먼 바다에 처박히겠다는 생각에 두 다리는 걷잡을 수 없이 떨렸고 필사적으로 앞차 뒤꽁무니만 보려는 두 눈에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줌 지리고 바다에 처박히지 않은 걸 지금도 감사히 여긴다. 이것이 영도에 갈 때 버스를 고집하는 또 다른 이유다.
아무튼, 버스를 타고 가면 될 일이다. 좌측으로는 마린시티와 동백섬을 품은 해운대 바다와 우측으로는 사람들로 붐비는 광안리 앞바다를 정면으로 구경할 수 있다. 부산항대교로 향하는 동안에는 컨테이너가 가득 쌓인 부두와 거대한 크레인, 생업에 종사 중인 다양한 배들을 볼 수 있는데 언제나 바닷가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곳에 살았는데도 부산항을 품고 있는 바다의 전경은 내게도 생소하고 이국적이다.
HJ중공업 정류장에서 내려 봉학초등학교 정류소에서 환승 버스를 기다렸다. 어렸을 땐 필사적으로 내가 지금 당신이 모는 그 버스에 타겠다는 제스처를 취해야 했지만, 요즘엔 그러지 않아도 버스는 알아서 멈춘다. 그러나 영도는 달랐다. 환승 버스는 쌩하니 지나갔고 나는 실로 오랜만에 다음번 버스를 타기 위해 열심히 몸을 기웃거렸다.
올라탄 버스는 예상치 못한 속도로 내달렸다. 타 지역인들이 부산 버스의 위엄에 놀란다는 게 뭔지 알겠다. 부산 도심에선 이렇게 질주하는 버스가 거의 사라져서 나는 이 난폭한 버스가 내심 반가웠다. 부산사람의 기본표정(어쩐지 화가 난 듯한)을 장착한 기사님은 노인들이 승하차할 때만큼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었지만 내가 내릴 때는 얄짤없어서 나는 길거리 풍선처럼 휘청거렸다.
언제나 흰여울마을에 갔지만, 이번엔 청학동을 찾았다. 애용하던 스타벅스가 사라진 뒤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떠돌이 신세가 되었는데, 인터넷에서 본 청학동 스타벅스 뷰에 반해서 직접 보기로 한 것이다. 이것이 백수의 삶이다.
3층에 자리 잡고 이곳의 뷰를 만끽하며 근처 아파트 매매가를 서치 했다. 이혼을 논한 뒤로 낯선 동네에 가면 이곳이 살 만한 곳인지를 살펴보고 아파트 매매가를 찾아보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언제나 바다와 숲이 동시에 보이는 곳을 꿈꾸는데 알아본 곳 중 영도가 가장 저렴한 지역임은 확실해 보였다.
어렸을 때 영도다리 밑에서 주워왔단 소리 안 들었던 부산사람이 있을까. 나는 그 말에 진짜 부모님을 찾겠다고 보따리를 싸서 길을 나섰던 어린이였다. 영도대교는 국내 최초의 도개식 가동교로 알려진 부산의 랜드마크였기 때문에 바다 끝까지 떠밀려온 피난민들이 헤어진 가족들을 찾기 위해 집결했던 장소였다. 1934년 개통 당시의 이름은 부산대교였으나 통상적으로 영도다리라고 불렸고 부산사람들은 영도에 사는 사람들을 보통 ‘영도사람’이라고 부른다.
영도는 섬 지역(제주에서 이주한 이들이 많았다)의 정서를 품고 있고 전국에서 온 피난민들의 집결지였기 때문에 그들을 찐 부산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실은 낙후된 지역에 사는 가난한 이들과 구분되길 원하는 욕망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식의 갈라 치기와 시선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영도의 변화에 따라 그 시선 또한 서서히 변하고 있다. 부산의 랜드마트가 된 마린시티의 빌딩 숲도 한때는 불법 주차된 트럭들이 즐비했던 걸 떠올리면 앞으로 영도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거 아닌가.
스타벅스를 나와서 봉래산에 위치한 ‘복천사’를 향해 호기롭게 걸어가보기로 했다. 끝도 없는 급경사를 경험하며 무모한 선택을 자책했지만 예상치 못한 길은 이번 산책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 되어주었다.
신축 아파트보다 구축 아파트를 선호하는 다소 특이한 나의 취향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오래된 건물의 외관에 붙은 타일이나 벽돌, 고풍스러운 창살 같은 것. 오래되고 낡아서 부스러진 것들의 빛바랜 색감이 주는 정서를 사랑한다. 그것들 옆에 피어난 정돈되지 않은 꽃과 나무도.
복천사 찾기를 포기하고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만난 귀여운 ‘조내기 고구마 역사 기념관’에서 뜬금없이 한국에서 고구마를 처음 재배하게 된 지역이 영도라는 지식도 습득했다. 그곳에서 조그만 5번 마을버스를 타고 신선영광아파트 정류장에 내렸다.
복천사로 향해 걷는 동안 영도에 절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급경사지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낡은 주택이 아니라 곳곳에 숨어있는 수많은 절을 보며 그들의 삶을 가늠해 본다. 인간은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을 때 종교를 찾는다. 내가 그랬다.
겨우 찾아낸 복천사는 공사 중이다. 그곳에서 보이는 끝내준다는 야경은 결국 확인하지 못했지만, 내려가면서 거짓말 같이 펼쳐진 풍경을 두 눈에 담았다. 그것으로 이미 충분했다. 아니 차고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