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야기 3

12년 만에 깨달은 것

by 윤비


나의 최애 프로그램인 EBS 한국기행

‘시골 노부부로 삽니다’ 편을 보았다. 화면 속 할아버지는 부인 옥자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표현했는데 환하게 웃는 할머니의 표정을 보면서 불편함이 기어올라와 보기 힘들었다.

그것은 날조된 사랑의 표현 같았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이어져온 감정 표현이 아니라 마치 할리우드 액션 같았다고나 할까 맘 속으로 ‘제발 그만해 할배!’를 외쳤다. 아니나 다를까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노느라 가족 챙길 겨를이 없었단다. 철이 없었다고 고백하는 할아버지 옆에서 꽃처럼 웃고 있는 옥자 할머니.

난 생각했다.

옥자 할머니는 어떤 맘으로 웃고 있을까.

난 생각했다.

옥자 할머니처럼 웃고 싶지 않다고.




최근 남편이 본인의 친구 이야기를 했다.

공기업에 다니는 친구는 월, 수, 금 3일 퇴근시간 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주는 것을 조건으로 나머지 화, 목 , 토, 일은 본인 취미 활동에 전념하는 것을 부인과 합의했다는 것이다. 자전거, 서핑, 등산 등 취미 부자인 그는 집에 5일 동안 들어가지 않은 적도 있으며 그의 부인은 거기에 대해서 어떤 간섭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이 둘을 키우는 전업주부인 그녀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고는 있을까?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는 것을 합. 의. 했는지 궁금하기는 할까?

나는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선배는(남편을 선배라 부른다) 그 와이프가 어떤 맘으로 그런 제안에 오케이 한 것 같은데?’

‘응? 글쎄?’

‘아이 둘을 키우는 전업주부가, 남편 소득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그 사람이, 사회적 약자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정말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생각하는 거야? 애는 여자 혼자 낳았어? 월, 수, 금 3일 저녁시간만 같이 보내면 아빠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지 정말로 궁금하네’

‘아니 OO이도 강압적으로 이야기한 게 아니고 좋게 이야기했겠지’

‘그런 말을 좋게 이야기하면 그 사람이 배려 깊은 거야? 그 제안부터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

그는 아주 당당하다. 가족을 부양할 돈을 벌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 남편은 그가 부럽다.

우리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각자 취미 생활을 하는 것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럼에도 내가 이토록 화가 나는 것은 내 남편도 결국 그 친구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지난 12년 동안 가사노동은 나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라고 늘 말했지만 본인처럼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는 남편은 없다며 끝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심지어 내가 다른 아내들보다 헌신적이지 못하다고 불평했다.

친정에 갈 때마다 남편은 퇴근 후 내가 제. 대.로. 된 식사 한번 차려 준 적이 없다고 물 한잔 스스로 가져다 마시는 법이 없었던 장인어른에게 응석 부리듯 불평했고 의례 ‘일하고 들어온 사람 집 안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여야지!’라는 답이 내게 꽂히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를 보며 똑똑히 말했다.

‘나는 일하고 집에 들어오는 사람 아니야? 내가 선배보다 퇴근이 더 늦어. 그리고 선배는 그 부실한 밥상 내게 차려준 적도 거의 없고 체력적으로 더 딸리는 내가 제. 대.로 된 밥상 차려야 하는 근거는 뭔데? 내가 여자라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또다시 ‘남편 밥을 잘 챙겨주라’는 아빠의 말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역시 사위의 기를 살려주려는 의도보다는 엄마의 남편 또한 내 남편과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할 뿐이었다.

반면 엄마는 둘이 일하느라 힘드니까 주말이라도 같이 잘 챙겨 먹으라며 매번 먹거리들을 두 손 가득 쥐어다 주신다. 내가 엄마의 짐을 덜어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짐까지 더 보태버린 꼴이 돼버린 것이다.

나는 이럴 때마다 나의 엄마가 내 남편의 눈치를 보는 것만 같아 맘이 복잡하다. 물론 그녀가 그런 맘으로만 사위에게 잘해 주시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맘이 아주 없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에 기분이 불쾌해진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장모님 우리 장모님’ 노래를 불러가며 나보다도 통화를 자주 할 정도로 나의 엄마를 좋아한다. 과연 나는 이걸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헌신적인 엄마를 경험하지 못한 남편에게 우리 엄마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내게 그런 엄마가 있는 것은 행운이라며 부러워했고 나에게서 그 헌신적인 엄마를 찾으려고 했다.


남편이 원하는 헌신적인 엄마와 아내. 헌신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것이 부부관계에서 필수적 요소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그 헌신이 관계를 망쳐버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의 헌신은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 돼버리고 만다. 나 역시 엄마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고 함께 잘 살아 나갈 수 있는 방법을 합의해 나가는 것이 상대방을 아끼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나와 남편이 생각하는 건강한 부부관계의 모양이 애초에 달랐던 것이다.







내가 받은 결혼 축하카드 중에서


상대방의 기대치는 언제나 예상을 빗나갔고 우리는 그 틈을 메우고자 각자의 방법으로 본인은 원하지도 않는 것들을 무리하게 맞춰주느라 문제가 생겼다.


애정을 버리지 않으면서 기대감을 내려놓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애정을 버리기로 작정하면서 함께 기대감을 버리려고 했고 혹은 좋아하는 만큼 기대했다.


하지만 이제 남편에 대한 기대가 점점 사라진다. 드디어 내가 내공이 생긴 것이 아니라 이것은 자포자기의 심정과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내 생각과 달라도 그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맞춰주었던 것들이 하기 싫어졌다. 나를 잃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그와 살고 싶은가를 매일 생각했다.
나는 애정과 기대를 분리하지 못한 것처럼 남편의 인생과 내 인생을 분리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불행은 불행만 데려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 덕분에 나는 내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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