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피우다.

이런 거 첨이야

by 윤비



그는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손수 저녁 식사를 만들어 먹이고 싶었다. 혼자 마트에서 장을 봐서 갈 생각이었지만 그 사람이 기어이 마트를 오겠다고 해서 여유롭게 식재료를 구경했다. 이왕이면 건강식을 먹이고 싶어서 ‘쌈밥정식’ 컨셉으로 상을 차리기로 맘먹고 채소 코너를 어슬렁거렸다.


마트 직원이 태어나서 첨 보는 푸르디푸른 신종 배추를 추천했지만 왠지 케일 같아 보여서 구매하진 않았다. 고기를 사야 할까 자주 먹지 못한 생선을 사 야할까 고민에 빠질 때 즈음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넘어 내가 듣고 있는 것과 똑같은 마트 방송이 들렸다. 남편은 지금 마트에 왔는데 뭐 사갈 것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멀리 카트를 끌며 두리번거리고 있는 남편이 보여서 얼른 코너 안으로 몸을 숨겼다.


분명 오늘 저녁은 식사 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었는데 갑자기 전화한 그가 당황스럽고 원망스러워졌다.


그에게 들킬까 봐 장 봐 둔 것을 내팽개치고 마트를 재빨리 빠져나왔다. 집에 먼저 도착하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녔지만 빈 택시가 없었다. 지친 나는 자포자기의 맘으로 그에게 전화를 건다.



‘어디예요?’


‘나 마트 안이예요’


‘.. 미안해요 나 오늘 저녁 못해줄 것 같아요’


‘괜찮아요 덕분에 저는 마트 구경도 하고 좋아요 신경 쓰지 말아요’





오늘 새벽에 꾼 꿈이다. 나는 실로 바람피운 것과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마트 안에서 남편을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 그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택시가 잡히지 않았을 때의 조바심. 홀로 마트에 남겨진 그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 그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수 없었던 아쉬움과 절망감. 그리고 남편을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까지 고스란히 온몸으로 느껴서 한동안 다시 잠들기 어려웠다.


그 감정들은 괴로우면서도 달콤했다.


실제로 바람을 핀다 해도 이와 다르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바람피운 경험을 체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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