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경과보고
늘 그렇듯 순식간에 1월이 지나갔다. 그동안에 삶은 달걀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달걀이 폭탄처럼 터진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였고 작년과 다를 바 없이 토요일마다 도서관에서 20권의 책을 대출하여 읽었다. 주식으로 겨우겨우 30만 원의 수익을 내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뜨개질로 비니 3개를 만들고야 말았으며 일주일에 6번씩 1시간 30분의 산책을 하는 루틴을 유지했다.
새로 추가된 루틴에는 영어 선생님인 친구에게 교재를 추천받아 ‘What can you do for me?’ 같은 유치원생 수준의 영어공부를 시작했다는 것과 맛없는 오트밀을 차마 버리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만든 오트밀빵이 너무나도 맛있어서 아침마다 오트밀빵을 먹게 되었다는 것이 있다.
새로운 도전도 하였다. 무려 버스로 40분이 걸리는 곳까지 가서 국화빵을 사 먹었다. 이것을 도전이라고 적는 것이 켕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도전이다. 호기롭게 국화빵 만 원 치를 주문하자 흠칫 놀라는 사장님의 얼굴을 보며 이것이 도전임을 다시 확인하였다. 한동안 냉동실에 저장해 둔 국화빵으로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누가 봐도 사회에 보탬이 되지 않고 개인의 발전과도 무관해 보이는 루틴이다. 무해하고 잉여로운 날들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코피를 흘렸다. 텐션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 애썼던 것이다.
나의 루틴은 필사적으로 두 팔과 두 다리를 휘적거려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평형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가라앉지 않고 물에 뜨는 것이 목표로 설정된 탓이다.
식사 후에 바로 치우지 않는 걸 싫어하지만 그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없이 방치될 걸 알기에 마지막 한 숟갈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곧장 설거지하러 가는 것이다. 자발적이긴 하지만 자발적이라고만은 볼 수 없는. 즐겁기도 하지만 즐겁지만은 않은. 대부분의 일이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없이 게을러지기 쉬운 타입이기 때문이다.
질척 질척하게 짓이겨진 흙이 가라앉아 있을 땐 맑게 떠오른 물을 나로 착각하듯이 부지런한 나를 나인 것처럼 여기며 살고 있다. 나는 작은 돌멩이 하나로 순식간에 보란 듯이 탁해지므로 루틴이 무너지면 같이 무너질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1월 1일 저녁에도 산책을 빼먹지 않았다. 오래된 아파트 상가 2층의 ㅇㄹㄹ타로사주 역시 불이 켜있다.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 그곳의 불이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지금껏 그곳이 어둠에 잠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면 힘이 난다. 사는 거 다 똑같은 것 같아서.
고정된 루틴에 속박된 기분이 들어 올해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했는데 그게 국화빵 사러 가기 정도였다. 도대체 나란 인간은 뭘까. 나도 내가 한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뭔지는 도무지 모르겠지만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손에 쥐면 바스러질 것 같았다. 내비치면 악귀의 모습을 하고 어김없이 나를 찾아올 것 같아 무서웠다. 그러나 이런 하찮고 한심한 일상을 감히 행복이라 입에 올린다. 되찾은 것이 아닌 새롭게 맞이한 지금의 평온이 얼떨떨할 때마다 한 번씩 웃어본다.
나의 꾸준함은 절박함이었지만 누군가에겐 무심함, 누군가에겐 냉정함으로 평가되었다. ‘너는 내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하게 한 나를 알 것도 같다. 2월에도 절박함과 무심함과 냉정함을 가지고 하찮은 일을 꾸준히 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