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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Jul 23. 2024

부모님 집 청소

탈출이 지연되었고 그래서 청소를 했다.

 소파에 앉아서 누가 조명을 끄러 갈 것인지 떠넘기다가 갑자기 가위, 바위, 보를 시작하는 부모님과 그들을 멀리서 지켜보다 조용히 조명을 끄러 가는 나.  

   

리모델링 업체 선정과 공사가 미뤄지는 바람에 아직도 부모님 집에 머무르고 있다. 하루 바삐 탈출을 도모하던 마음은 접어두었고 이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중이다.     


부모님 집에는 음식으로 가득 찬 4대의 냉장고가 있다. 이러다가는 그들이 5번째 냉장고를 살 수도 있으므로 그대로 놔두라는 엄마를 설득하고 설득해서 냉장고 청소를 시작했다. 찾지 못해서 만들고, 또 만들어서 넣어준 쌈장, 양념간장통들이 무더기로 발굴되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때마다 어머나 당혹스럽고 호호호 웃기고 아이고 후련해하는 엄마.      


그들은 물건이 넘쳐나면 필요 없는 물건을 처분하는 대신에 수납장을 들이는 부류다. 문제는 물건을 넣어두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잊어버린다는 이유로 멀쩡한 수납장을 비워두고 밖으로 물건을 꺼내놓고 쌓아둔다는 것이다.     


나의 to do list 중 하나는 그것들을 정리하는 것이었고 지금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라는 걸 알았다. 하루 6시간씩 투자해서 냉장고, 싱크대, 주방, 베란다를 청소하고 정리해 나갔다. 청소하는 김에 낡아서 변색된 싱크대 손잡이 26개와 부러진 경첩도 교체했다. 내 싱크대는 몇백만 원 들여서 교체하면서 엄마의 싱크대는 손잡이만 교체하는 매우 얍삽한 나. 그런데도 새 싱크대가 됐다고 매우 기뻐하는 엄마.      


청소하는 동안에는 대체로 화가 났다. 말끔히 청소하고 단정하게 정리하고 사는 삶의 편의성을 모르는 그들이. 무엇보다 제대로 된 시도조차 하지 않고 어차피 안되니까 그대로 놔둬 안돼라고 말하는 것이. 나는 안된다고 했던 것들을 악착같이 닦아내고 치우고 고쳤다.      


그들이 늙어서 청소하고 정리할 여력이 없다는 건 모르지 않지만 그게 좋은 핑곗거리가 되는 것 같아서 싫었다. 화가 났다. 그러나 그들의 핑계는 진짜였다. 나처럼 청소하고 정리하는 건 도저히 무리다. 나는 그저 그들이 노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건지도.      


to do list의 청소를 하는 동안 못했던 산책을 하다가 길가에 잠자듯이 죽어있는 참새를 발견했다. 그 애가 내장이 터진 험한 몰골로 죽어있었다면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풀숲으로 옮겨줄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다. 참새를 놓아주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나의 이타심은 딱 이 정도구나. 싱크대 손잡이만 갈아주는 정도.    

  

부모님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답답해서 청소를 했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갑갑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 집에서는 고작 8년을 살았고 28살 이후로 이렇게까지 부모님과 오랜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나는 부모님을 여전히 50대로 여기고 있었고 부모님은 아직도 나를 아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뭘 해도 불안해하고 험한 일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고 뭐든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는 부모님이 노인이 된 줄도 모르고 말귀를 한 번에 못 알아듣는다고, 집 안이 지저분하다고,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한다고 버럭 화를 낸다.      


가족과 함께 있으면 내가 얼마나 나쁜 년인지가 증명된다. 그래서 여기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탈출이 지연되었고 그래서 청소를 했고 그래서 부모님이 노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건 신의 뜻이라더니 그럴지도.(하지만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아무리 나쁜 년이라도 엄마가 싱크대를 보고 기뻐했을 때, 나 역시 기뻤던 건 걸리는 것 하나 없는 진심이었으므로 죄책감에 휩싸여서 괴로워하는 것보단 그런 찰나의 순간을 자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나쁜 년은 노력해도 결코 착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일도 청소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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