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샤워를 끝내고 나오면 머리를 말리라고 하고 운동화를 신을 때 구둣주걱 쓰기를 종용하고 비가 와서 운전이 위험하니 밖에 나가지 말기를 바란다던가 현관문 밖까지 맨발로 쫓아 나와 머리끈을 챙겼냐고 동그랗게 눈을 뜨고 쳐다보는 엄마로 인해 거의 매일을 포효하며 지내고 있다.
28살 이전의 나는 어떻게 살아왔던 걸까. 엄마는 이 모든 행동을 자식을 향한 부모의 관심과 배려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것이 몹시 불편하고 싫으니 운동화 정도는 내가 알아서 신도록 내버려 두라고 말했고, 그녀의 언행이 바뀔 리는 없고, 덕분에 하루에도 몇 번씩 부모님 집에서의 탈출을 도모하고 있다. 그래봤자 도망치는 곳은 집 근처 공원밖에 없지만.
집 앞에 있는 공원은 매우 아름다운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을 떠나올 때 즈음에 심긴 빈약한 나무들은 어린이였을 때부터 한눈에 반했던 메타세쿼이아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울창해져서 걷는 내내 나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오래된 공원처럼 아름다운 장소가 또 있을까. 하지만 이 아름다운 장소를 두고도 허름하고 익숙한 아파트의 골목길과 고목들이 종종 떠올랐고 공원을 몇 바퀴씩 돌고 돌아도 산책의 갈증이 해소되지 않아 가슴이 답답해서 답답하기도 했다.
굳이 이 공원에 정을 붙을 필요가 없는데도 언젠가부터 새로운 환경에 무조건, 가능하면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이혼하는데 걸린 2년의 시간을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빠른 판단과 적응을 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원망이 자리 잡고 있어서다.
변화가 두려운 것은 여전하지만 변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헛된 노력은 하지 않기로. 받아들이려고 애쓴다. 언젠가 애쓰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날을 기대하면서.
최근 유일하게 교류하는 아빠의 형제, 큰아버지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는 한평생 흡연을 했고 술은 막걸리만 고집하고 먹던 음식만 소식하는 사람이었다. 여행을 간 적이 없으며 목돈 쓰는 일이 두려워 월세를 주고 같은 집에서 평생을 살았던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
그의 세계가 이것으로 마감되는 것에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리고 6개월도 남지 않은 그의 삶보다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내 모습을 더 안타까워하는 나를 보았다. 누군가의 죽음을 자기반성으로 이용하는 건 사람이 저지르는 흔하고 잔인한 짓이고 나는 그 일을 어김없이 저질렀다. 그간 살아왔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해야겠다고.
좀 즐거워야겠다. 그동안 넘치게 우울했으니 이젠 모든 행동의 기준을 즐거움에 두고 싶다. 어차피 기저에 깔린 우울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그 사이, 사이에 즐거움을 최대한 많이 끼워 넣고 사는 것이 내가 살 길이라는 생각을 한다. 몇 초라도 즐거울 수 있다면 그 일을 시도할 것이다.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무섭고 두려울 때면 무섭다고 두렵다고 엉엉 울 것이다. 참지 않을 것이다. 울음을 그치고 다시 즐거운 일을 하자. 그리고 그것을 반복한다.
어떻게 살아도 우리의 죽음은 결국엔 누군가의 자기반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게 죽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그러니 큰아버지의 죽음은 안타까울지라도 그의 삶을 안타까워할 권리가 내겐 없다. 그는 자신만의 확실한 즐거움과 행복을 찾았고 그렇게 살았다.
너무도 뻔한 말이 가슴속에 콕 박힐 때는 그 말이 간절히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내 멋대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