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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한 날씨, 습한 마음

또다시 길 위에 서서

by 윤비

올해 5월 날씨가 너무도 마음에 들어 아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고 내뱉은 다음 날부터 날씨는 급격히 습해졌다. 체력이 약한 사람은 여러모로 사는 것이 힘든데, 그중 하나가 철저하게 날씨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이다. 습한 날은 몸과 마음이 아프다. 습기를 빨아들인 몸이 평소보다 무거워져서 고개를 가누는 것도 힘겹게 느껴진다. 그냥, 계속 드러눕게 된다는 말이다.


기후는 지금보다 더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므로 앞으로의 삶은 더 녹록지 않을 게 분명하다. 고로 나는 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압박감을 안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좀처럼 체력은 늘지 않고 떨어지기만 한다.


공부한답시고 오전부터 밤까지 앉아있어 보니 알겠다. 공부 역시 체력싸움이구나.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는 건 타고났는데 체력이 없어서 집중력이 떨어진다. 생각해 보니 학교에 다닐 때도 그랬지. 왜 엄청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성적 잘 안 나오는, 요령도 없고 오직 성실하기만 한 그런 애들 말이다.


머리는 끊임없이 공부에서 취업, 취업에서 공부로 쳇바퀴를 돌리고 있다. 일주일에 고작 한 번씩 올렸던 글도 쓰지 못할 만큼 불안하고 조급하여 한 달 만에 안절부절 똥 싸고 뒤 못 닦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쓰는 행위는 중요한 것이었다. 생각과 감정을 돌아보고 정리하고 기록한다고 해서 그 기록대로 인생이 흘러가는 건 아니지만 쓰지 않으면 내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조차 모르게 된다. 그래서 더 불안했던 모양이다.


하고 싶어서 했던 공부가 아니다. 취업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취업이 안돼서 시작한 공부다. 적어도 공부는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왜 공부하지 않고 취업하려고 하는지, 무리해서 자영업으로 눈을 돌리려는 지도 알겠다. 세상 어디에도 쉬운 길은 없고 나는 이 와중에도 정신 못 차리고 아직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며 그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왜 아직도 틀을 깨지 못하고 돈 버는 일로 자아를 실현하려고 하는지. 왜 취업, 공부, 자영업 말고 다른 돈벌이는 떠오르지 않는 뻔한 사람인 건지. 왜 닥치고 그냥 해가 안 되는 나약한 사람인 건지. 이런 자신이 싫어서 힘들다. 없는 체력에 이따위 생각을 하느라고 매번 소파에 드러눕는다. 날씨 핑계까지 대면서.


이보다 더 힘든 일을 없을 거라 단언했던 그 시절은 흘러갔고 또다시 이보다 더 힘든 일은 없을 거라 여겨지는 길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같이 느껴지는 이유다. 나는 또다시 지금이, 이 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고 생각한다. 안개가 걷히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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