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는 다 끝났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하던 때가 있었다. 나는 ‘아이’가 선호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었다. 사회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대상을 선호의 영역에 집어넣는 건 애초에 잘못된 전제이고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라는 걸. 지금 생각해 보면 등골 서늘해지는 일이 한때는 전혀 거리낌 없었다는 걸 알아챌 때마다 당황스럽다. 요즘 그런 일이 많다.
아이를 기르는 게 두려웠던 나는 아이가 없고, 아이 없는 내가 5월이 운동회 시즌이라는 걸 알게 된 이유는 집 앞에 초, 중, 고등학교가 나란히 붙어있기 때문이다. 운동회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순으로 치러지고 소음의 세기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순으로 크다. 그리고 모든 운동회는 꼭두새벽(물론 내 기준이다)부터 시작된다.
5월의 어느 날, 왁자지껄한 소리에 잠을 깨어 부리나케 창가로 쫓아갔다. 도끼눈을 하고 마주하게 된 광경은 참으로 놀라웠다. 운동회구나. 아직도 운동회라는 걸 하는구나. 다시 운동회를 보게 되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콩주머니를 던지고 커다란 공을 굴리는 아이들을 보니 자연스레 나의 운동회가 떠올랐다. 나는 이상하리만치 항상 청군이었고 늘 맘속으로 백군이 되길 갈망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진 것보단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이 더 큰 사람이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백군에게 시선이 간다.
아이들은 소리 지르라는 사회자의 말에 소리 지르고 춤추라는 사회자의 말에 미친 듯이 춤췄다. 그래 얘들아. 공부하느라 스트레스 많이 받지? 아줌마도 그래. 휴.
나는 꽤 시니컬한 아이였다. 단체 무용 때 찍힌 사진들을 보면 이따위 것을 뒤집어쓰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율동을 하는 자신이 수치스러워 죄다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것치곤 율동을 틀리기 싫어서 무지하게, 열심히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이왕 하는 거 즐겁게 가 안 되는 것도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달라진 건 그땐 그게 멋있는 줄 알았다는 것이고 지금은 그게 어리석다는 것을 안다는 것 정도일까.
내 기억 속의 운동회는 엄마와 동네 아줌마들이 먹을 걸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 온종일 자리에 앉아 먹고 놀다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즈음 끝나는 것이었는데, 요즘의 운동회는 점심시간이 되자 끝나 버렸다. 요즘엔 빨리 끝나는 것인지, 아니면 예전에도 빨리 끝났는데 단지 어린이였을 때의 상대적 시간의 흐름이 그랬던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오늘, 점잖았던 고등학교 운동회가 끝남으로써 모든 운동회가 끝났다. 사람들이 사라진 텅 빈 운동장에서 시설물이 하나, 둘씩 철거되었다.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헛헛해졌다. 늦은 밤까지 댄스 연습을 하던 소녀들의 마음도 나와 같을까. 아닐 것이다. 소녀들은 안 그랬으면 좋겠다. 나의 헛헛함은 헛헛한 것치곤 너무나 묵직하다.
내년에도 이 자리에서 운동회를 보게 될까. 나는 그렇게 되길 바라는 걸까. 바라지 않는 것일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언제나 바라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고 아무 기대 없이 지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운동회처럼 불쑥 눈앞에 나타난다. 그건 그간 망상하며 정해놓은 미래보다 훨씬 더 기발하고 근사한 미래였다. 단지 그런 일만을 기대하며 요즘의 나는 하루를 버티고 다음 날의 아침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