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이 지났다.
부산은 포근했다. 부산 사람들은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지레 겁을 먹고 이누이트처럼 몸을 꽁꽁 싸맨다. 버스 안에 꽁꽁 싸맨 사람들이 더워서 헥헥 대는 모습을 보며, 마찬가지로 꽁꽁 싸맨 나는 집에 도착한 게 실감 났다.
몇 달 사이에 친구네 떡볶이 가게는 옷수선 가게로 바뀌어 있었다. 그곳을 스칠 때마다 늘 연락이 끊어진 그 애를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친구의 엄마를 떠올렸다. 40년 동안 떡볶이집 사장님이었던 아줌마는 일하지 않은 그 무수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실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의 그 공허함을 어떻게 견디고 계실지.
부산에서 이틀 밤을 지내는 동안에 언젠가 식물을 키울 요량으로 켜켜이 쌓아두었던 나의 마음을 알지 못했던 엄마가 빈 화분들을 내다 버린 것을 알게 되었고 끝내 내 손으로 처리하지 못한 아끼던 무늬 고무나무가 누군가에 의해 처참한 상태로 끊어져 죽어 나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텅텅 빈 나의 집에 안녕을 고하고 아파트 주차장에 오랫동안 세워두었던 차를 데리고 서울로 향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공기는 점점 차가워졌고 산은 문경을 기점으로 하얗게 바뀌었다. 팔이 두 개 밖에 달려 있지 않아 사진은 찍지 못했고 두 개의 눈으로 눈앞에 펼쳐진 설산의 전경을 만끽하며 여행하듯 운전했다. 아빠가 모는 차로만 도착했던 문경을 이제 내가 운전해서 지나쳤다. 나는 어른이구나.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어른이지만, 어른이라고 느끼는 순간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순간을 어느 시점에서 성장을 멈춘 사람처럼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며 어리숙하게 살고 있어서 이런 순간이 찾아오면 신기하고 낯설다.
내가 어른이 되는 순간은 국밥집에서 뜨끈한 국밥을 한 그릇 뚝딱 비워냈을 때처럼 혼자서 거리낌 없이 무언가를 쉽게 해냈을 때다. 운전하기 전에도 하는 중에도 하고 나서도 버겁다는 느낌이 없었다. 지금의 생활이 4시간 30분의 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단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올해는 많이 도전했지만, 대부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어떤 도전은 기회를 주었고 어떤 도전은 가볍게 실패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처참한 결과를 안겨주었다. 일 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어쩐지 도전보다는 실패에 익숙해진 사람이 된 것 같다.
지금은 실패할 에너지조차 없다. 밥벌이에 내가 가진 에너지 99%를 쓰고 방전되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밥을 먹고 씻고 청소를 한다. 밥을 다 먹기도 전에 두 눈이 스스륵 감기지만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는다. 온종일 허기졌던 몸과 마음에 따뜻한 된장국을 쏟아붓는다.
지하철 안의 빈자리를 낚아채는 기술은 늘었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목적이 있는 거짓말도 의미 없이 숨 쉬듯 내뱉는 거짓말도 버겁다. 그들이 된장국을 먹었다고 해도 그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정말로 된장국을 먹은 건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언젠가 이것에도 무뎌지게 걸까. 수월하게 거뜬히 무뎌지게 될까. 그래도 되는 걸까.
두 달이 지났다. 두 눈이 자꾸만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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