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용도
카페 밖에서 반려인을 기다리는 반려견이 보인다. 눈을 맞추고 뻐끔거리며 ‘안녕?’ 인사를 건네도 커다란 눈은 반려인을 찾아 허둥대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 가족과 똑 닮아서 쫄보였던 쫄랑이. 쫄랑이도 어딘가에서 허둥대고 있을까 봐 생각지도 못한 눈물이 솟고 두 귀가 발갛게 달아오른다.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길에서 닮은 개를 만나면 가슴이 주저앉는다.
때로는 소파 위에 올려진 쿠션을 보고 ‘쿠션 같은 것도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해야 해?’라는 물음에 ‘응. 말해줘.’라고 말했던, 살림살이 하나도 허투루 놓치지 않으려고 조목조목 따졌던 J가 생각난다. J는 침대에 깔린 매트리스 커버와 엄마가 선물로 주신 밥그릇과 수저까지 자기 몫은 남겨두라고 말했었다. 그때 나는 쿠션을 포함한 거의 모든 살림살이와 가구를 남겨두는 대신에 직접 만들었던 커튼처럼 내 정성이 유독 많이 들어가거나 가족들이 선물로 준 살림살이들은 철저히 남겨두지 않았다.
개가 똥을 끊겠냐고 하지만 2년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다. 엄청난 주정뱅이는 아니었지만 실제로 막걸리를 하루에 한 병씩 마셔대던 시기가 있었으니 주정뱅이가 맞았던 것도 같다. 주위에 담배를 끊은 인간(=우리 아빠, 참고로 아닌 척 하지만, 중학생 때부터 흡연했던 것으로 추측됨)은 있어도 술을 끊은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그게 나라는 사실에 엄청난 자긍심을 느낀다. 술은 앞으로도 마시지 않을 생각이다.
마치 구 씨가 더 마실 걸 알면서도 매일 소주 2병만 사 갔던 것처럼, 집 앞 슈퍼에서 매일 막걸리를 사는 게 부끄러워서 멀리 있는 마트나 편의점에서 사거나, 그것도 눈치가 보이면 독한 술 한 병을 사서 침대 옆에 두고 한 잔씩 마시고 잠들었었다. 혼술 하는 장면이 TV에서 보일 때면 텅 빈 하얗고 큰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내가 생각난다. 할 수만 있다면 텅 비어버린 그때의 나를 찾아가 말해주고 싶다. 도저히 믿기지 않겠지만 너는 괜찮아질 거라고.
기억은 아무렇지도 않게 불쑥 찾아온다. 쫄랑이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사랑이 있다는 것을, J는 변하는 사랑도 있다는 것을, 혼자 술 마시던 나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도 결국엔 스쳐 지나간다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 주고 훌쩍 떠나간다. 기억은 이런 용도였다.
주말에는 엄마에게 전화한다. 비로소 마음이 편하다고 숨 쉴 만하다고 행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는 너만 괜찮다면 엄마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내가 괜찮은 것과 별개로 엄마가 괜찮기를 바랐다.
네 걱정 말고는 다른 걱정은 없다는 엄마의 말에는 그만큼 나를 아끼고 사랑하며 내가 잘 살기를 바라는 염원이 깃들어 있지만 나는 그 말이 여전히 내가 걱정거리 혹은 골칫덩이인 것 같아 속이 상한다. 그만 걱정하고 잘한다 잘한다 우쭈쭈 칭찬만 해주면 안 되냐고 중년의 나는 노년의 엄마에게 어리광 섞인 화를 냈다. 여기서 어떻게 더 잘 살아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나는 최선을 다해 잘 살고 있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떻게 살아야 엄마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을지 알고 있다. 엄마 곁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챙겨 먹으며 또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 남편이 있는 여자였을 때 엄마는 나를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땐 오로지 결혼하지 않은 언니 걱정뿐이었다.
‘엄마, 아빠가 떠나거든 너희가 언니를 잘 챙기고 살아야 해.’
누가 봐도 능력이 출중한 언니가 나를 챙기면 챙겼지 내가 언니를 챙길 입장이 아니었음에도 엄마는 결혼하지 않은 언니를 보살펴야 하는 존재로 인식했다. 엄마에게 혼자 사는 삶은 자유롭다기보단 쓸쓸하고 불쌍한 것에 가까웠는데, 내 자식이 자신이 없는 세상에서 홀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잘살고 있다고 해도 안 먹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혼하면 큰일이 벌어질까 봐 벌벌 떨었던 걸 생각하면 엄마가 아예 이해 안 되는 건 아니다. 엄마는 이혼해보지 않아서 모르는 것이다. 혼자 살아보지 않아서 모른다. 엄마의 세상에는 남편과 자식이 전부이고 당연해서 지금의 내 삶이 머리로는 이해돼도 가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구나.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고 보통의 할머니인 것이다.
엄마를 50대 즈음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은 엄마와 함께 보낼 일이 20년 채 남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매번 화를 내고 후회하고 친구들에게 나쁜 년이라는 확인 사살을 당하고 나서 지금의 일들이 훗날 나를 찾아와 얼마나 감당할 수 없을 큰 슬픔을 안겨줄 것인지를 상상하며, 그러니까 끝까지 나는 훗날의 나를 걱정하며 가슴 안에 남아있는 화를 삭였다.
지난주부터 새벽 3시 즈음에 잠이 깨진다. 봄과 여름에 새벽에 몇 번씩 잠에서 깨는 나는 겨울의 한가운데 있는 것 같아도 봄이 조금씩 오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몸서리쳐지게 무서웠던 새벽은 사라지고 회사에 가기 싫어서 몸서리치는 나를 보며 나는 잘 살고 있는 걸 실감한다. 기억이 머무르지 않고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