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는 건 따뜻한 것이구나.
아침의 나는 말랑하고 따끈하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종종 걸으면 입김이 하얗게 뿜어져 나온다. 그럴 때 실감이 난다. 몸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살아 있다는 건 따뜻한 것이구나.
저녁이 되면 나는 딱딱하고 차가워진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다시 말랑하고 따끈해지기 위해 정성을 쏟는다. 공원을 달리고 맛있는 음식을 든든히 먹고 뜨끈한 물로 샤워하고 침대에 쏙 들어가면 사르르 긴장이 녹아 말랑해지기 시작한다.
살이 많이 쪘다. 살을 빼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한 건 아니었는데 이번 주부터 살을 빼기 위한 달리기를 하고 있다. 무릎이 아팠던 건 준비 운동의 부족이나 잘못된 자세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늘어난 체중 탓인 것 같다.
‘이게 내 몸이 맞아?’ 거울 속에 비친 내 몸을 왼쪽으로 돌려보고 오른쪽으로 돌려보고 요리조리 돌려봐도 너무 낯설다. 불룩 솟아오른 아랫배를 하염없이 통통 쳐서 둥둥 울려본다. 묵직한 울림이다. 이로써 식욕이 돌지 않아 사는 재미가 없다고 징징대던 말라깽이의 호시절이 끝났다. 체중계를 구입했다.
몸이 편안하다고 느끼는 체중은 51~53kg 정도인데, 지금은 58kg다. 물론, 나의 키에 58kg는 적당한 체중이지만 갑자기 7kg가 불어나면 몸의 움직임이 상당히 불편하고 이러다 걷잡을 수 없이 살이 찔까 무서워진다. 그래서 나는 한파주의보가 뜬 영하 10도의 밤에도 기어이 뛰었다.
이 날씨에도 뛰는 미친 자가 있을까 싶었지만 달리기에 미친 자들은 뛰었다. ‘이 사람들은 정말 미쳤구먼.’ 혀를 끌끌 차며 나는 달렸다. 엉덩이가 허벅지에 감각이 없다. 손가락은 얼었고 입꼬리는 올라간 채로 내려가질 않는다.(달릴 때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입꼬리가 올라간다.)
젊은이들은 나를 앞질러 달린다. 사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 달린다. 그들을 앞서갈 생각은 없고 앞서갈 수도 없다. 내 시선에서 점점 멀어지는 그들을 보며 헉헉 혼잣말을 한다 ‘젊어서 좋겠다. 좋겠어. 잘 달려서 좋겠다. 좋겠어.’
눈 예보가 있는 날에도 달렸다.(다음날 눈이 쌓이면 달릴 수 없기 때문에) 달리는 중에 눈이 내렸다. 걸을 때는 나긋나긋하던 눈송이들이 돌진하듯 내게 달려들었다. 몹시 저돌적이라 살짝 당황스럽고 기쁘다. 아무래도 눈송이들이 내게 반한 것 같다. 어느새 주위가 하얗게 변했다.
금요일, 거리는 무언가가 굽히는 맛있는 냄새가 풍기고 누군가를 만나고 만나러 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런 날은 정말 혼자 달리기 싫었다.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하는 게 맞고 말할까 말하지 말까 고민될 때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 맞는 말이었다.
걸을 때는 오르막인지도 몰랐던 길이 뛸 때는 엄청난 오르막처럼 느껴진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오르막을 먼저 느낀다. 조금의 오르막도 놓치지 않고 알려준다. 처음에는 오르막에서도 페이스를 늦추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달렸는데 지금은 오르막이 나타나면 긴 호흡을 내뱉고 페이스를 늦춘다. 포기하지 않고 뛰는 게 더 중요해진 뒤로는 달리는 괴로움이 많이 덜어졌다. 세상 일이란 건 어쩜 이리도 다 한통속인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다음을 생각하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우선 뛰면서 체력을 올리고 (더불어 살도 빼고) 저녁에도 말랑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