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의 쌍꺼풀을 위한
촬영에 임하는 유명 배우를 앞에 두고 역시 쌍꺼풀 수술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여전히 군살 하나 없는 완벽한 바디를 가진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눈의 노화는 피해 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말쑥한 재킷을 입고 중후한 표정을 지어도, 화려한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활짝 웃어보아도,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경쾌하게 계단을 걸어 올라올 때도 살인하러 가는 사람 같아서 흠칫했다. 그의 깊고 게슴츠레한 눈은 배우를 하는데 상당한 기여가 되겠지만, 나의 눈은 그럴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나이 든 남자를 타깃으로 하는 바지는 다 거기서 거기라 대부분 잘 구분하지 못하지만, 디자이너들은 재빠르게 찾을 수가 있는데 지금의 나는 눈앞에 커다랗게 적혀 있는 품번을 보고도 코디할 바지가 어디에 있는지 허둥댄다. 무엇이든 재빠르게 찾을 수 있었던 총명함은 사라졌다. 찾는 물건을 코앞에 두고도 못 찾는 현상은 쌍꺼풀 수술과는 무관하지만, 어쩐지 쌍꺼풀 수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만 같다는 확신에 차 있는 요즘이다.
12월 말부터 시작된 최적의 쌍꺼풀을 위한 성형외과 투어는 다음 주면 그 여정을 마무리한다. 그동안 총 4곳의 성형외과를 돌았는데, 인기의 정도에 따라 상담 예약 기간이 2주에서 2달까지 걸렸다.
첫 번째, P성형외과는 50대 초반의 의사로 비절개와 눈매교정(*눈 뜨는 힘이 약해서 하는 수술)을 진행하고 지방 이식 여부는 수술 경과를 봐야 알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잡아 주는 라인이 두꺼워 다시 잡아달라고 제안했지만 두 번째로 잡은 라인 역시 두껍긴 마찬가지였고 그는 도통 뭐가 두껍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두 번째, W성형외과는 입구부터 찾기 힘들어 우왕좌왕 난항을 겪었다. 입구는 지하철역 인근의 대로변이 아니라 뒷골목, 그러니까 보통 뒷문으로 사용하는 출입구가 정문인 구조였는데, 멋대로 들어갔다가 가드에게 양 겨드랑이를 붙들린 채로 끌려 나올 것 같은 위화감이 들었다.
데스크에는 어리고 예쁜, 성형의 티가 완연한 6명의 인원이 배치되어 있고 대기실은 젊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중국 관광객의 수요도 높은 듯 곳곳에 중국어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고 대기실의 큰 모니터에선 이곳에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은 환자의 사례가 연신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계적이고 불친절하지만 그렇다고 불만을 표출하기엔 애매한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실 안 모니터에 뜬 내 얼굴을 보고 ‘어이쿠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상담실장은 다들 놀란다며 살짝 웃어준다. 어디서 못생기게 찍는 기술이라도 배운 건지, 진짜 내 얼굴이 저렇게 생긴 건지 어깨가 움츠려든다.
상담실장이 나가고 곧이어 들어온 원장에게서는 자신감이 흘러넘친다. 자신의 미간이나 눈을 똑바로 주시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30C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앞머리를 까고 생판 모르는 남의 눈을 마주 보는 일은 상당히 민망하였고 의사가 생각보다 잘생겨서 당황해하는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젊고 까칠한 의사는 눈뜨는 게 불편하고 겹주름으로 생긴 느끼한 인상을 자연스럽게 하고 싶다는 나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라인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혹시 다른 병원에서 지방이식을 권하면 절대 하지 말라는 코멘트를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차트에 상담받거나, 상담 예정인 병원을 적는 기재란이 있고 바이럴 마케팅을 활발히 하는 것으로 보아 돈을 끌어모으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고 젊은이들을 상대하다 보니 서비스나 기능적인 부분보다 보다 트렌드에 집중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세 번째, H성형외과는 상담실장부터가 눈의 상태를 면밀하게 진단하고(최근 미간, 이마 보톡스를 맞은 적이 있냐고 물어보는 곳은 이곳이 유일했다) 쌍꺼풀 수술의 원리를 쉽게 설명해 주었다. 곧이어 등장한 의사는 입술각질을 뜯어주고 싶을 정도로 건조한 입술을 가진 고지식한 인상의 젊은 의사였는데 내 눈은 무조건 절개와 지방이식, 눈매교정이 함께 들어가야 한다고 진단하였다.
잘 생기지 않았음에도 W성형외과의 의사보다 더 긴장된 이유는 그가 확신에 찬 내향인이었기 때문이었다.(본인은 같은 내향인을 만나면 더 긴장한다) 차근차근 차분하게 말하는 말투와는 상반되게 쌍꺼풀 라인을 잡는 그의 손길엔 거침이 없었고 나의 니즈보다는 그의 진단으로 수술이 결정될 것이 확실해 보였다. 미감은 떨어지고 기술은 뛰어난 의사. 그가 내 허벅지에서 지방을 빼내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손에서 땀이 주르륵 흘렀다.
네 번째, O성형외과 안내 데스크의 직원들은 모두 수수한 인상의 친철한 미소를 장착한 이들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연령대 높은 환자들이 많다. 주로 리프팅 관련 시술을 홍보하는 안내문이 많았다. 상담실에 들어온 의사와는 20CM 거리쯤에서 심지어 무릎까지 부딪쳐가며 두 눈을 똑바로 마주했음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타고난 분위기와 에너지라는 것이 새삼 흥미로웠다.
단언컨대 나는 사람을 편하게 하지 않는 부류 중에서도 상급에 속한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그렇다. 세상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람을 편하게 하는 부류들도 있구나. 솔직하고 단순한 단어들이 내 입에서 술술 흘러나온다. 나는 느끼해지기 싫다! 담백해지고 싶다! 절개는 무섭다! 비절개는 안 되냐! 의사는 비절개도 가능하나 눈꺼풀 처짐은 비절개보다 개선이 어렵다고 했다. 그가 잡아 주는 쌍꺼풀 라인은 느끼하다고 하기엔 담백했고 담백하다고 하기엔 느끼했다.
강남에만 가면 기가 빨리는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드러누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절개로 하고 싶지만, 절개로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있었는데 엄마는 단호히 비절개는 안된다고 말해주었다. 답은 명쾌해졌다. 엄마의 말을 따르기로 한다.(그녀는 딱 내 나이 때 절개쌍꺼풀 수술을 하였다.)
나에게는 아직 다섯 번째, A성형외과가 남아있다.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