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

디스 이즈 더 시티 라이프

by 윤비

일주일 동안 8시간 20분 지하철에 머무른다. 아침에는 어떻게든 앉아서 가고 싶다. 사람들이 다 내리고 지하철에 오르는 상식적인 행동을 유지하는 게 점점 힘이 든다. 지하철이 역내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준비 태세를 갖추고 사람들이 쏟아져 내리는 동안에 재빨리 빈자리를 탐색한다. 아무리 좋은 자리(끝자리나 여자들만 앉아 있는 자리 등)가 보여도 내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를 노리는 게 앉아서 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은 99%의 운과 1%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운이 좋아 자리에 앉게 되면 곧바로 눈을 감는다. 아침부터 치러낸 혼자만의 경쟁으로 인간들을 눈에 담을 체력이 없다.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는 헤드셋과(아침에는 음악을 들을 기운이 없으므로 주로 방한용과 소음 차단용으로 이용된다.) 인간들이 내뿜는 냄새와 바이러스를 차단할 마스크를 쓰고 수행하듯 꼼짝 않고 목적지까지 간다.


눈, 귀, 코를 차단해도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타고 내리는 것은 진동으로 느껴진다. 4인용 자동차에 6명이 꾸역꾸역 탔을 때, 차체가 내려앉는 묵직한 감각과 비슷하다. 그러면 왕십리역에 도착했구나. 나는 곧 내려야 하는구나. 이대로 영원히 계속 원을 그리며 돌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간 3kg의 살을 뺐는데,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것이 힘들어 다이어트를 중단했다. 몰려드는 사람들의 속도에 맞춰 걸을 수가 없는 건 생명체로써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다. 지하철 계단을 수월하게 오르내리기 위한 근력을 되찾기 위해 나는 3KG짜리 덤벨 2개를 구매했다. 이제 나의 삶은 지하철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20대부터 자차로 출근했으므로 지옥철을 경험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출퇴근하는 동안 지하철 안의 유동인구가 평소와 달리 한산하면 다들 연차 쓰고 놀러 간 건가 싶어 질투부터 하고 보는 노동자가 되었다. 나쁘지 않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딘가로 일하러 갈 수 있다는 기쁨이 아직은 더 크다.


덕분에 기관사들의 성격과 경험이 지하철 운행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출입문이 닫칠 때 무리하게 승차하시면 다칠 위험이 있으며’라는 안내를 무려 4번이나 반복해서 송출하는 기관사는(처음에는 시스템 오류라고 생각했으나) 무리하게 타는 승객 때문에 곤욕을 치른 사람일 것이다. 아침부터 생기가 넘치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기관사가 있고, 말끝을 ‘~슴다’로 줄여서 말하는 성격 급하고 유쾌한 기관사가 있고 피곤해 죽겠으니 신경 거슬리게 하지 말라고 조곤조곤 경고하는 기관사가 있고 들릴 듯 말 듯 힘겹게 속삭이는 기관사가 있다. 내가 기관사가 된다면 아마도 신경 거슬리게 하지 말라고 조곤조곤하고 단호하게 말하는 기관사가 되었을 것 같다.


퇴근할 때는 집에 간다는 기쁨으로 녹초가 되어도 아침보단 여유가 있다. 통제 욕구가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보통은 ‘인간들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는 책을 읽으며 틈틈이 시트콤을 시청하듯 인간들을 엿본다.

다리를 꼬고 앉아 있거나, 꼰 다리를 까딱까딱 움직이기를 개의치 않는 사람. 백팩을 메고 자리에 앉자 상체를 숙인 채 핸드폰을 보는 사람(=그 앞에 사람이 설 수 있는 공간까지 차지하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가래 섞인 기침을 해대는 사람(입을 가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치아 사이에 낀 무언가를 빼내려고 혓바닥과 공기압을 사용해서 찍찍대는 사람, 거리낌 없이 임산부석에 앉는 사람. 청춘 드라마를 찍는 연인들, 대부분 나를 언짢게 하는 인간들이 많은데 요즘은 자신 앞에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려는 사람(그런 의도가 없다고 해도 그 무신경함이 더 싫다.)이 가장 거슬린다.

가방에 달린 키링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인간들은 온갖 것을 가방에 매달고 다닌다. 가방에 좋아하는 걸 달고 다니겠다는 욕구가 꽤 귀엽다.(나는 키링을 달지 않는 부류다.) SNS를 통하면 굳이 알고 싶지 않은 타인의 취향까지 알게 되지만, 키링은 타인의 취향과 성격을 상상하게 만든다. 꼬질꼬질한 보노보노를 매단 사람은 언제 땀을 삐질삐질 흘릴까. 포로리와 너부리를 달고 다니는 사람은 왜 이렇게 없을까. 보노보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노보노 같은 부류의 사람들인가.


이렇게 하루 100분의 시간을 보낸다. 반복적으로 하는 일이지만 그 안에서는 반복적이지 않은 일들이 100분간 벌어진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우연히 일어난 통제 불능의 일들은 100분 안에 끝난다. 그 안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걸 한다. 내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는 이것과 거의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교통체증을 견디며 안락하게 자차로 출퇴근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인간들과 함께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것이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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