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월급을 받았다.
4번째 월급을 받은 이곳에서 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미지근한 상태를 유지한다. 회장이 디자인실로 들어오는 길을 따라 황금빛 컨페티를 뿌리는 동안에도 이죽이죽 웃었다. 밸런타인데이와 회장의 생일을 치르며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에도 삥을 뜯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도 이런 종류의 웃긴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내 인생이 재밌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어머님이 생전에 많이 베푼 덕에 자신의 삶에 복이 많다는 그는 주로 유통기간이 지난 먹다 남긴 음식이나 선물로 들어왔으나 자신이 먹지 못하는 달콤한 간식, 오래된 화장품 같은 것을 직원들에게 베푼다. 매달 보육원에 지름이 15 MM 쯤 되는 다이아몬드 반지와(너무 커서 나는 그것을 크리스털이라고 생각했다.) 목걸이를 걸치고 직접 방문하는데 이 모든 행위를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여기는 것이 뻔히 보여서 귀여워 보일 때도 있다.
게다가 회장은 ‘남미새’다.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고 홀로 아이를 키우며 성공한 여성 기업인이 남미새라는 건 상당한 남미새인 것이다. 그 ‘남미새’적 모먼트를 포착하는 것도 이 회사를 다니면서 맛보게 되는 재미 중 하나다.
돈이란 놈은 예민한 나의 성정을 무던하고 동글동글 다듬어 놓았다.(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회사에서 자아를 찾는 것도 그만두었다. 회사와 나를 동일시했던 시절을 내 손으로 끊어냈을 때, 그동안 나라도 생각했던 나는 허상이라는 걸 알았다. 일류 기업에 다닌다고 내가 일류는 아니며 후진 회사에 다닌다고 해서 내가 후진 인간은 아니라는 거다. 현재는 무기력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게 도와준 회사에 대한 고마움이 있고 그 감정이 다른 감정보다 대략 1% 정도 더 많은 상태다.
노비가 적성에 맞는 모양이다. 노동 말고는 돈을 버는 방법을 찾지 못했고 노동의 대가로 받은 돈으로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는 지금의 삶이 지난 몇 년에 비할 데 없이 만족스러워서 지금의 피로에 찌든 상태가 오래 지속되길 바라고 있다. 18,000원 떡볶이를 고민하지 않고 배달시켜 먹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명절에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 있는 삶 말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걸 움켜쥐고 살았을 때는 움켜쥔 만큼 불만족스러웠고 스스로가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은 주변 상황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몸 안에 닻을 내리고 개 같은 상황을 가만히 지켜본다.
주말의 나는 혼자서 주섬주섬 돛을 달고 흘러 다닌다. 집에서 널브러져 있는 상태가 하루 이상 이어지면 두통이 찾아오고 급기야 몸이 아픈 현상이 발생하여 생긴 루틴이다. 일평생 집순이로 살아왔으므로 이럴 리가 없다며 부정도 해보고 억지로 온종일 집안에 드러누워 보았지만 끝내 몸과 마음이 즐겁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애정이 없는 상대를 대할 때 감정 소모가 현저히 줄었고 마찬가지로 사방에 나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들과 더불어 나에게 무관심하고 무관한 사람들(이걸 관계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이 있다는 사실에 편안함과 안정감이 느껴졌다. 이미 나에게는 도파민을 주는 관계를 맺은 소수의 인간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은 필요치 않다.
이 변화가 좀 더 일찍 일어났더라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렇게 오랫동안 애쓰며 살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와 무관한 사람들의 언행에 덜 상처받았을지도 모른다.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가스라이팅하는 사람에게 변화하지 못해서 미안한 감정을 품으며 나를 덜 미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곳에서 7개월을 보내는 중이다. 여전히 음식은 한결같이 맛없지만 무심한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이곳에, 마음 한 뼘 내주지 않는 도시에 슬슬 맞춰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