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을 당하고 괜찮은 사람은 없다.

어느 날 Y가 나에게 말했다.

by 윤비

무엇이든 끊어내는 행위는 힘들다. 마라 로제 엽떡과의 관계를 끝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쉽지가 않다. 떡볶이는 지친 나의 마음에 즉각적인 도파민을 안겨주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죄책감이 쌓였다. 이것은 도피처일 뿐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팔지꼰’의 삶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들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을 한심하게 여기는 이들조차 같은 상황에 빠지면 똑같이 지 팔자를 지가 꼰다. 대부분의 갈등과 괴로움은 어쩌면 끊어내지 못해서 생기는 일일지도 모른다.

P와 Y의 관계는 지금껏 보지 못한 유형이었다. Y를 향한 P의 집착은 마치 사랑하지만 증오하는 것과 유사했는데, 이 흔해 빠진 감정이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었다. P에게 Y는 친구, 애인, 딸, 혹은 노예 같았고 Y는 그 모든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충실히 해냈다.


P는 누군가가 자신의 책장에서 파일을 꺼내 본 흔적을 발견하면 그 누군가 대신 Y를 향해 분노를 쏟아냈다. 이것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것과는 다른 결이다. P는 종로에서 뺨 맞으면 거기서 당장 상대방 뺨을 후려갈길 수 있는 사람이기에.


이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몇 번은 참아도 결국엔 왜 이런 모욕감을 주느냐고 항변하기 마련이지만 Y는 마치 자신이 한 일인 것처럼 잠자코 P의 분노를 받아냈다. P의 종잡을 수 없는 분노는 한번 시작되면 마치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치솟고 차마 믿을 수 없는 욕설로 배설되었다.


그러나 10분쯤 지나면 P는 다시 다정하게 Y를 부른다. 그러면 Y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P를 향해 달려간다. 하루에 몇 번씩 일어나는 일이다. 간혹 P가 Y에게 무심할 때면 사무실에 평화가 찾아오지만, Y는 그 순간조차도 편하게 있질 못한다.


P는 Y의 자취 집도 회사 근처가 아니라 본인 집 근처에 얻게 했고 Y가 아플 때면 저녁 식사를 배달시켜 주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언제나 Y부터 챙겼고 몇십만 원짜리 선물과 월급 외의 별도의 경제적 지원을 해준다. 기분 좋을 때도 기분이 나쁠 때도 P는 언제나 Y를 찾는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폭력 남편과 그걸 감내하는 아내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패턴이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사실로 추측할 따름이며 나는 그들이 어떤 라포를 형성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P와 Y의 관계가 마라 로제 떡볶이만큼이나 건강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최악으로 만드는 관계, 자신의 바닥을 드러나게 하는 관계. 헤어져야 비로소 살 수 있는 관계다. 나 또한 이런 관계를 맺은 적이 있고 끝내고 나서야 그 관계가 얼마나 나를 갉아먹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어느 날 Y가 나에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고백하건대 나에게 Y의 존재는 P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P의 분노를 받아주고 P의 안위를 살피는 역할을 벗어나게 해주는 쓸모를 가진 사람. 그래서 입 뻥끗하지 않고 철저히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무시해 왔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Y의 표정이 실은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세상에 그런 모욕을 당하고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

P는 옆 테이블에서 스피커로 통화하는 사람의 무례함을 알아도 자신의 무례함은 모르는 사람이다. 그는 나를 이곳에 채용해 준 고마운 사람인 동시에 내 인생에 엮이지 않길 바라는 사람이다. 이 모든 일을 겪기 전 그의 눈동자를 보고 느꼈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Y에게 P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Y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가 이런 글을 함부로 적어도 되는 것일까.


가끔 J의 꿈을 꾼다. 꿈에서 나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관계를 끊어내기 위해 애쓰는 동시에 관계가 끝날까 봐 불안해한다. 그 감정이 너무 생생해서 잠에서 깼을 때도 잠시 그 세계에 머물러 있다. 어리둥절하다. 내 무의식은 무슨 생각으로 이 흔적을 끄집어낸 것일까.

끊어진 관계도 내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걸 알려주기 위해 불쑥 나타난 것 일지도 모른다. 또다시 나를 갉아먹는 사람을 곁에 두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라고.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고 안주할 생각 말라는 경고일 수도 있겠다. 나의 무의식이 나를 헤칠 일은 없으니까. 어떻게든 나는 내가 잘 살기를 바랄 테니까 말이다. 그건 Y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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