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도착했고 10km를 달렸다.
휴일 달리기보다 퇴근 후 열받은 상태로 뛰는 게 더 재밌다. 그 덕에 처음으로 10km를 달렸고 동시에 무릎부상을 얻었다. 마치 평생 달려온 사람처럼 달리지 못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고 무릎에 핫팩을 붙이고 이러다 뜨거워 죽겠다 싶은 걸 굳이 굳이 참고 자다가 화상을 입었다. 무릎 위로 봉긋하게 솟아 있는 물집을 터트리며 나는 참 한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는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고뇌는 시작된다. 한걸음에 ‘그만 뛸까?’ 두 걸음에 ‘계속 뛰자!’를 두 다리가 멈출 때까지 계속한다. 닳고 닳은 표현을 아니하지 않을 수 없다. 달리기는 정말로 나하고만 싸우면 되는 싸움이었다.
회사에서는 한걸음에 ‘열받아!’ 두 걸음에 ‘열받는구먼..’이 퇴근 때까지 반복되나 있는 힘껏 그들과 싸울 수 없다. 그 덕에 나는 3개월 만에 차분하고 집중력 있게 일하는 여성스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줄곧 여성스럽다는 말을 들어왔다. 어렸을 때부터 그 표현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꼈는데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차분함에 내재된 순종적이고 내향적인 성향이 여성의 특성으로 여겨지는 게 싫은 거지 내가 차분한 게 싫은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여성을 단정적으로 평가하는 게 싫었고 나를 그들이 생각하는 여성의 범주 안에 집어넣는 게 싫었던 것이었다. 나는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세상에는 차분한 남자도 있다. 긴 머리를 가진 남자를 여성스럽다고 판단하지 않듯 긴 머리를 가지고 있는 여자 또한 그냥 긴 머리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현재 나는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와 있고 오랫동안 숏컷을 좋아했었다.)
어찌 되었든 긴 생머리를 보유하고 차분한 내가 회사에서 들었던 ‘여성’스러움은 칭찬의 뉘앙스이긴 했으므로 ‘하하 제가 여성스럽습니까?’로 대강 마무리하였고 퇴근 후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뛰었다. 치열하게 나하고만 싸우면서. 마음껏 눈치 보지 않고 싸울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해방감을 느낀다. 이기면 좋고 져도 큰 타격은 없다. 뜨끈한 물에 뽀독뽀독 소리 나게 씻고 폭신한 침대에 누우면 그만이다.
고백하자면 뒤늦게 대한민국의 러닝 붐에 동참하여 러닝의 장점을 쓰는 것이 조금 겸연쩍다. 멋진 러닝 복을 차려입고 우르르 활기차게 뛰는 러닝 크루들이 꼴 보기 싫고(그러면서도 나는 그들이 입는 멋들어진 러닝 복을 장바구니에 차곡차곡 담고 있다.) 나와 같이 혼자서 집에 있는 아무 옷이나 허겁지겁 집어 입고 나와 서툴게 하지만 치열하게 뛰는 러너들에겐 동질감을 느낀다. 그들의 뒤통수를 향해 응원의 텔레파시를 발사한다. ‘당신도 사는 게 힘들군요!’
드디어 책이 도착하였다. 나의 글이 실린 책을 집 안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모셔두고 넌지시 바라본다. 나는 책이 도착한 이후로 출퇴근 때마다 이 짓을 반복하고 있다. 내가 적은 글이지만 어쩐지 읽을 용기가 생기지 않아서 그러니까 이것 또한 조금 겸연쩍어서 책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글쓰기와 달리기는 어쩌면 가장 닮아 있는 것 같다. 쓰다 보면 계속 쓰고 싶다. 쓰다 보면 알 수 없었던 나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알게 되고 그것만으로도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다시 감정과 생각이 관성적으로 흘러가 같은 수렁에 빠지려 할 때마다 용기를 주었다. 달리기는 ‘그만 뛰자, 계속 뛰자’라는 생각에 갇혀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그 순간 그것 말고 더 중요한 문제는 없다.
해방감. 그들은 나에게 다른 방식으로 해방감을 준다.
다음 목표는 하프다. 나는 내가 기어이 하프를 목표로 삼았다는 사실이 원망스럽고 동시에 하프를 달리는 나를 기대한다. 매일 무엇을 써야 할지 생각하고 기대는 하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아도 충분하기 때문에.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하고 소중하기 때문에.(그래도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