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해 정확하게 알 필요는 없다.
바나나는 하루 3개씩 먹어도 줄어들지 않아서 냉동해 놓고 우유와 함께 갈아 마시고 있다. 출근하자마자 책상 위의 미니 가습기, 텀블러, 1L짜리 물병을 들고 1층으로 내려간다. 손을 씻고, 그것들을 뽀득뽀득 소리가 나게 씻긴다. 가습기에 물을 채우고, 텀블러에 아메리카노 3 샷을 담고, 물병에 미지근한 물 1L를 채운다. 3층으로 올라와 자리에 가지런히 세팅하고 앉아서 바나나 우유를 마신다. 이것이 나의 아침 루틴이다.
바나나 우유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그걸 마시기 위해서라도 회사에 가야 한다. 지난주 금요일의 바나나 우유는 아무리 용을 써도 열리지 않았다. 이 맛에 회사 출근하는데... 나는 바나나 우유를 들고 건너편에서 믹스커피를 타 마시는 C부장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열어 달라고 해볼까?’
한참을 끙끙대고 고민하다 탕비실로 내려가 병 입구를 뜨거운 물로 데웠다. 뚜껑은 쉽게 열였다. 아차 싶었다. 충분히 내 힘으로 할 수 있었다. 기댈 구석이 있으면 기대려고 하는 나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C부장은 부산에서 서울까지 운전했다는 나의 말을 듣고 본인은 아내가 운전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내가 어디를 가든지 자신이 운전해서 아내를 데려다주고 그건 아들이나 딸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응? 어쩌라고?’
연말 회식 자리에서 욕 말고 할 수 있는 말이 부산과 서울 운전의 차이점 같은 것 따위라 저 말까지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또 C부장의 화목한 가족 스토리로 이어졌다.
당신의 행동은 그들이 직접 운전하는 경험과 성취, 재미를 앗아가는 행위가 아니냐고. 그들이 운전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혼자서는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거냐고. 누군가 나의 경험의 기회를 매번 앗아간다면 나는 매우 화가 날 것이라고. 정말 그게 배려이자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거냐고. 그건 단지, 당신의 불안을 없애기 위함이 아니냐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본디, 디테일 하나하나 콕 찍어서 찰지게 욕할 수 있는 사람인데 말하고 싶은 대로 나불거렸다간 삐딱한 정체가 탄로 날 것 같았다. 나는 여기서 내가 알고 있는 나로 보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어. 그래 알았어. 이제 그만해.’의 뉘앙스로 고개를 주억거렸던 것이 불과 며칠 전이다. 그런 C부장에게 뚜껑을 열어달라고 말할 뻔했다니.
3개월 차에 접어들자 나는 정체가 탄로 난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술에 얼큰하게 취한 P이사가 나를 ‘마음이 아픈 애’와 ‘히키코모리’ 정의하는 것을 보고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P이사는 내가 살림에 서툴러서 계란 볶음밥으로 일주일을 버티는 줄로 알지만, (점심으로 계란 볶음밥을 계속 싸간 탓이다.) 나는 요리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고 살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살림꾼에 가깝다. 타지에서 가족, 친구, 남자도 없이 인생의 재미도 모르고 혼자 사는 짠한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나는 심지어 좋아하는 남자도 있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너무 말라서 비실비실 힘이 없다고 많이 먹으라는 말을 수시로 듣지만 나는 이번 주말에 혼자 홀케이크를 사서 먹어치우고 영하 –7의 밤에도 6KM를 냅다 뛰었다.
그러니까 P이사의 말에 따르면 나는 타지에서 좋아하는 것도 없이 잘 먹지도 못해서 비실비실 몸도 허약하고 마음도 아픈 이혼녀인 것이다. 나는 굳이 이 이미지를 크게 부정하지도 정정하지도 않고 박장대소했다. P이사의 말처럼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이 아플 때가 많고 대부분 혼자 있을 때 행복을 느끼므로 그의 추측은 틀리고도 맞고 맞고도 틀렸던 것이다.
그들이 나에 대해 정확하게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그럴 권리는 없다. 나 역시 P이사나 C부장을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가. 그들이 생각하는 나는 모두 다를 것이고 그 덕에 나는 그들의 숫자만큼 이 세상에 존재한다. 수많은 내가 존재한다는 건 흥미롭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비실비실한 여자는 올해 10KM를 뛰는 게 목표다. 3KM를 겨우 뛰었지만, 6KM를 두 번 뛰고 나서 감히 10KM를 뛰는 나를 기대하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공원을 혼자서 달리는 기분이 좋아서, 숨이 끝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가라앉는 기분이 좋아서, 힘들었던 순간이 거짓말처럼 잦아든다는 사실을 직관할 수 있어서 오래 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만나고 싶은 내가 많다. 만나지 못한 수많은 나를 내가 만든다는 건 흥미롭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