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시간들
2020과 2021년은 2019년 이혼위기로 겪었던 상처를 씻어내려고 애썼던 시간들이었다. 그 두 달도 안됐던 시간을 치유하기 위해서 2년 남짓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회복되지는 않았다. 모든 상처는 희석될 뿐이지 완전히 소멸되진 않는다. 완전한 치유는 판타지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우리는 그때와 같은 파국으로 치닫는 일은 없었지만 2년이라는 시간 중 절반은 각방 생활을 했다. 나는 이 기간 동안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감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적당함의 길이가 상대방과 다른 것에 외롭기고 하고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결혼 생활 중 가장 숙면했다.
노란 조명을 켜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다 잠들었다. 넓은 침대에 대자로 누워서 파닥거리고 이리저리 뒹굴거리면서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아무렇게나 돌돌 말아 무릎 사이에 끼웠다. 남편과 잘 땐 그가 입과 코로 내는 온갖 소리를 피해 오른쪽으로 웅크리고 잠들었기 때문에 내가 정면을 향해 대자로 누웠을 때 가장 편안해한다는 사실도 첨 알았다. 나는 내 몸이 가장 원하는 대로 아무 때나 잠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그리고 아직까지도 날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내가 날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것이었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니. 나는 성장하지 않아도 되니 아플 필요 없다는 말을 더 믿게 되었다. 그런 경험은 겪지 않을 수 있다면 겪지 않게 하는 것이 맞았다.
나를 돌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그 누구보다 즐겼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건 남편이라는 존재가 전재된 시간이었다. 혼자 있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늘려보기로 했다.
무작정 걸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걷고 싶은 만큼. 걷고 싶을 때는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뛰쳐나가서 걸었다.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애쓰지 않았고 생각이 나면 생각이 나는 대로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다리가 뻐근해지고 힘들어지면 벤치나 카페 그리고 주로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파도가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짙어졌다 옅어지는 모래사장, 부서지며 부글거리는 파도 거품, 넘치도록 아름다운 윤슬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무 설명하지 않아도 죽을 상을 하고 앉아 있어도 됐다. 그러고 한참 있으면 살기운이 났다.
내향적인 내가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돌보고 있을 때 외향적이며 혼자 있는 시간을 병적일 정도로 견디지 못했던 남편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나와 떨어져 있는 방법을 택했다. 사실 나는 아직도 그의 방법이 탐탁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행동이 이해되지도 않으면서 이해하려는 척 애쓰는 내 모습에 더 넌더리가 났다.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남편은 내가 생각한 만큼 복잡한 사고를 하는 사람은 아니다. 내 복잡한 사고가 그를 복잡한 인간으로 만들었을 뿐. 이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는 나랑 살고 싶으면서도 제멋대로 살고도 싶을 뿐이었다. 그것이 이 중년 남자의 로망이었고 내 욕망 역시 다르지 않았다. 나 또한 남편과 살고 싶으면서도 내 뜻대로 살고 싶었다. 다만 그 방법이 다르다는 것뿐.
그러나 그 방법이 삶의 과정이고 그게 바로 삶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언젠가 우리가 이혼을 하게 될지라도 그건 전혀 뜬금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지금은 서로를 떨칠 수 없기에 이 관계는 유지되고 있다.
그렇게 나는 남편 없이도 혼자 맛집에 가서 혼자 갈매기살을 구워 먹고 국밥집에서 술을 맘 편히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