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1

하찮은 나의 분류법

by 윤비

사람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뉠 수 있다고 단언한다.


#1 크록스를 신는 사람과 크록스를 신지 않는 사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크록스를 절대 신지 않는 사람이다. 그것을 신으면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라 할지라도 들창코처럼 뭉툭한 앞코가 쳐 올라간 구멍이 숭숭 난 그 흉측한 것을 내 발에 끼울 수 없다. 평소 호감 있는 사람이 크록스를 신고 나타나 편안해서 신었노라 한다면 이해하는 척이라도 할 수 있으나 만일 혹여나 크록스가 예뻐서 신었다면 나는 절망할 것이다. 미의식이 다르다는 것은 내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그건 그와 내가 거의 모든 것이 다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름을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닌 내게 그것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는지 회사 생활 내내 뼈저리게 느꼈다. 내게는 다름이 주는 매력요소에 미의식은 포함되지 않는다.


#2 루시드 폴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과 관심 없는 사람.

남편은 나와 사귀기 전 내가 루시드 폴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덕분에 좋은 노래를 알게 되었다고 했지만 그 말은 나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꾸며낸 말임을 결혼 후에나 알게 되었다. 지금은 내가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전혀 관심 없다.(일단 남편 욕은 접고) 암튼 나는 루시드 폴의 음악을 처음 접한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애정 중이다. 친구들도 좋아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루시드 폴의 콘서트장에 갔다가 다들 침 한번 꼴깍 삼키지 못하고 숨소리조차 낼 수 없는 침묵 속에 콘서트를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콘서트가 끝나고 친구들의 아연 질색하는 표정을 보며 루시드 폴의 음악에 대중성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결혼식날에도 남편 친구에게 루시드 폴의 노래로 축가를 맡겼다가 노래 부르는 사람도 당황하고 그 노래를 듣는 이들도 이것이 무슨 노래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다. 결혼식 비디오엔 신부 혼자 부케를 들고 고개를 까닥까닥거리고 있었다. 모두들 기억에 남는 축가라고는 했다.


루시드 폴을 언급할 때마다 내가 느끼는 바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단지 관심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알고 있다 그의 음악에 관심이 간다면 이미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3 집 밖에서 카톡 알림을 켜놓는 사람과 꺼놓는 사람.

여기서 포인트는 '집 밖'이라는 것이다. 만약 회사에서 카톡 알림을 켜 놓는다면 당신의 지위가 높은 편이거나 눈치 없는 사람이 거나다. 나는 감히 회사에 감히 알람 소리를 낼 수 없는 위치에 있었는데 알람 소리를 주야장천 내는 이들은 차, 부장 이상이었다. 무음에 익숙해져 버린 나는 퇴사 후 집에서 카톡 알림을 켜놓고서는 매번 그 '카톡'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회사가 아닌 외부에서 알림 소리를 낸다는 것은 또 뉘앙스가 다르다. 이건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주로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무지막지하게 큰 벨소리로 설정해놓고 동영상을 소리 나게 듣고 카톡 알림을 켜놓는다. 각종 소음이 난무하는 이 세상 당신의 알림 소리 따윈 듣고 싶지 않은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할 줄 모르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우리 엄마의 벨소리가 쩌렁쩌렁 울릴 때의 당혹감이란! 나는 그녀에게 한소리 했다가 너는 전화해서 한 번만에 받는 법이 없다며 되레 욕을 먹었다.


#4 당근 마켓을 하는 사람과 하지 못하는 사람

심플 라이프를 표방하며 집에 놔두기는 싫지만 버리기엔 아까운 물건들을 당근 마켓으로 처리하려다 하루 만에 당근 마켓을 탈퇴했다. 의자 하나를 팔아보려고 했는데 우선 구매자의 말투가 굉장히 무례했음에도 꾹 참고 심지어 할인까지 해주었는데 그는 약속시간이 10분 지난 후에도 연락이 없었고 인내심을 발휘해 5분만 더 기다리다 가겠다는 나의 메시지에 이제야 출발한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휑한 주차장 찬 바람맞으며 하늘색 의자 하나를 놔두고 서있었던 나는 구매자에게 오지 말라하고 그 자리에서 회원 탈퇴를 하고 씩씩거리며 의자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는 사이도 아니고 첨 만나는 사이에 어찌 이토록 당당하게 약속시간에 늦으면서 미안한 기색이라고는 없는지 그 뻔뻔스러움에 푼돈 하나 건지려다 분노만 얻었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눈물까지 흘리며 깔깔 웃는 친구는 너는 그래서 어떻게 세상을 사냐고 참 어지간하다고 했다. 심지어 너 같은 애 첨 본다고 하기도 했는데 그렇구나 이것으로 탈퇴까지 하는 사람은 없는 거구나 이것이 대수롭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거구나 어쩌면 그 구매자도 이런 부류여서 그랬을까. 하지만 나는 필요 없지만 버리기엔 아까운 물건들은 죄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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