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콤한 나의 소울푸드
우리 가족은 냉면을 먹으러 가서 물냉면을 먹을지 비빔냉면을 먹을지 고민하는 일은 단연코 단 한 번도 없었다. 면은 당연히 비빔을 먹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냉면을 선택하는 지인들을 보면서 비빔냉면을 선택하지 않는 그들의 심심한 입맛에 거리감을 느끼곤 했다.
우리의 비빔국수 역사는 아직까지 현존하는 남포동 '할매집'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국민학생일 무렵 남포동에서 쇼핑을 하고 나면 우리는 항상 그 집에 들렀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코 안으로 훅하고 들어오는 유부 향이 섞인 진한 멸치육수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 냄새는 절로 내 위장을 꿈틀거리게 했다. 나의 부모님은 자식들이 어려서 매운 걸 잘 못 먹는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았고 과연 매운 음식 중독자의 자식들답게 나와 언니는 매워서 눈물 콧물 쏟아내면서도 비빔국수를 다 비워냈다. 콧물과 눈물을 닦아내던 올록볼록 엠보싱이 들어간 한 겹짜리 얇은 휴지의 감촉. 그 뒤로 나는 엠보싱 휴지를 볼 때마다 비빔국수를 떠올렸고 개처럼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일요일 점심은 언제나 멸치육수를 곁들인 비빔국수를 먹었다. 메뉴 고민은 할 필요도 없었다. 엄마는 4인용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엄청난 양의 국수를 만들어냈고 우리는 히익 너무 많아서 못 먹는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결국 다 먹어치웠다. 매번 비빔국수를 만들어야 하는 엄마는 너네(아빠 포함) 진짜 징글징글 하다며 본인은 잔치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비빔국수 브런치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을 때도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시작하면서 일요일의 비빔국수를 먹지 않는 날이 도래하게 된 것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일요일은 외출하지 않는 것이라는 무언의 공식 같은 것이 존재했었는데 그것을 깨트리면서까지 남자를 만나러 나가는 나는 엄청난 눈치를 봤다. 최대한 부모님이 내가 외출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없게 방심하는 틈을 타서 잽싸게 나가려고 했지만 강아지 쫄랑이가 부리나케 쫓아와서 너 이 자식 어딜 나가냐고 앙앙 짖어대는 바람에 언제나 떠들썩하게 나가야 했다.
우리는 6년의 연애 기간 동안 일주일에 5~6번을 만났다. 남자한테 눈이 돌아서 그 좋아하던 비빔국수도 내팽개치고 뛰쳐나가는 딸을 보는 부모님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렇게 자연스럽게 비빔국수를 같이 먹던 일요일 오후는 사라졌다. 엄마는 드디어 비빔국수에서 해방돼서 조금 기쁜 모양이었지만.
이젠 비빔국수 지옥에서 해방된 엄마에게 비빔국수를 만들어 달라는 말을 하는 게 어쩐지 미안하다. 먹고 싶지만 해달라는 말을 선뜻 하지 못하는 나를 엄마는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그렇게 또 비빔국수를 먹게 되면 덩달아 아빠가 더 신이 난다. 이제 너랑 언니가 해달라고 안 하면 비빔국수도 못 얻어먹는다고 아빠는 허겁지겁 비빔국수를 해치운다.
인생을 통틀어 후회되는 일 중 하나를 꼽으라면 이 비빔국수 브런치를 깨버린 일이다. 토요일에 남자 친구를 만났으면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냈어야 했다. 생각보다 엄마, 아빠, 언니, 쫄랑이와 함께 사는 기간이 짧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나는 그들과 겨우 28년 동안만 같이 살았고 쫄랑이와는 10년밖에 같이 살지 못했다.
이제 남포동 할매집은 남편과 함께 간다. 그곳을 가기 위해 남포동에 가지는 않지만 그곳을 가지 않는 것은 아직 섭섭하다. 독특한 형태의 테이블은 하늘색 페인트로 덧칠되어 어쩐지 생소하고 비빔국수의 맛도 변해버렸지만 육수 맛은 예전 생각을 나게 할 정도로 맛있어서 우리는 한 주전자를 다 마셔버린다.
그리고 남편의 소울 푸드, 먹자골목의 튀김을 먹으러 간다. 나는 길에서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아니 싫어하는 것에 가깝지만) 남편을 보면 도저히 먹기 싫다는 말이 안 나온다. 남편은 튀김을 먹으며 튀김은 이 집에서만 한다는 듣고 또 들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나는 첨 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결국 길에서 허겁지겁 튀김을 삼키는 이 남자와 함께 가는 단골 물냉면 가게도 생겨버렸지만 언제나 비빔국수가 내 소울 푸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