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도 체력이라면서?
모더나 3차 백신을 맞았다. 1,2차 백신 접종 후 심하게 앓아서 3차는 패스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나란 인간, 불평하면서도 시키는 일은 꼭 하는 인간인지라 터덜터덜 병원으로 향했다.
OO사랑 의원에서 1,2,3차 백신 접종을 했다. 운전은 물론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도 싫어하는 내가 집에서 298M만 걸어가면 도착할 수 있는 병원이었고 어쩐지 OO사랑 의원이라는 이름은 작은 규모의 대기 인원이 많지 않은 곳이라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그곳은 시트콤 배경을 해도 될 듯한 동네 의원의 느낌이 물씬 났는데 간호사분들이 포스가 범상치 않았다. 어려 보이는 몇몇 간호사들을 제외하고 모두 눈썹 따위는 그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았고 친절하지만 어쩐지 무서운 말투의 그녀들에게 나는 대번에 주눅 들었다. 아 내가 뭔가 큰 착각을 했다는 생각이 밀려든다.
혹여나 그녀들의 지시를 잘 못 알아듣고 심기를 거스를까 고분고분하고 있는데 진료실에서 엄청나게 호쾌한 목소리가 들린다. 의사 선생님이다. 여긴 진료실 문이 없었다. 진료실 입구에는 문 대신 진한 녹색 커튼이 걸려 있었고 진료내용을 밖에 있는 대기 환자들이 다 같이 들었다.
그렇게 모더나 백신 접종 주의사항을 몇 번쯤 듣게 되었을 때 내 차례가 되었고 나의 진료내용도 밖의 대기환자들이 같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밖의 간호사 선생님보다 더 친절하고 더 무서웠다.
3차 백신을 맞으러 갈 때쯤 나는 어느새 밖의 환자들이 내 진료내용을 듣는 것을 염려치 않게 되었고 무섭고도 친절한 의사 선생님께 그간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아련한 눈빛으로 아이고 어쩌노 어째를 반복하시며 40넘은 여자의 엄살을 받아주셨다. 아 그러고 보니 여긴 소아청소년과다.
3차 백신은 대부분 팔만 아프다가 끝난다는 말을 믿었는데 나는 그 대부분에 해당되지 못했다. 증상은 항상 밤 9시쯤 찾아왔다. 팔은 당연히 아프고 열이 나고 아무리 껴입고 전기장판을 깔고 보일러를 틀어도 오한이 들어서 온몸이 덜덜 떨렸다. 두통이 오고 유리조각이 몸 안 구석구석을 탐험하는지 가슴, 명치, 겨드랑이, 무릎을 쿡쿡 쑤시다가 나중엔 내 몸 관절 마디마디가 모두 시큰거리고 치아와 잇몸까지 아프다가 가슴과 갈비뼈가 뻐근해졌다.
그렇게 밤새 끙끙 앓고 아침을 맞이하면 탈진상태가 돼버린다. 그렇게 며칠을 아무것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게 되는데 그나마 3차 때는 이틀 만에 회복했다.
친구들에게 아프다 했더니 권나원이 역시! 하며 말한다. '내 주위에 체력 안 좋은 것들이 꼭 백신 맞고 저렇게 아프더라'라고 그러고 보니 아프단 것들은 하나같이 비실대는 애들이다.
그렇다. 나는 평생을 비실댔다.
중학교 등굣길은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였지만 언덕이 있는 바람에 나는 남들보다 2배의 시간이 걸렸다. 그 짧은 언덕을 매일같이 5~6번은 쉬어야 했고 같이 등교하던 친구는 내 속도에 맞추다 견디지 못해 결국 나는 혼자 등교했다.
학년 별로 오래 달리기를 하면 언제나 모든 학급 중에 내가 꼴찌였고 체육선생님은 옆에서 걷는 거랑 뛰는 거랑 구분 못하냐며 아연 질색했다. 수학여행 때 등산(왜 수학여행에서 등산을 하죠?!)을 했을 때도 당연히 꼴등은 나였고 이미 다들 저녁식사까지 한 뒤에도 도착하지 못한 나를 선생님들이 끌고 들어왔다.
밥 먹고 살기 위해 다닌 회사에서 등산을 갔을 때도(왜 회사에서 등산을 가는 거죠?!) 대량의 코피를 쏟아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꼬 다들 밥 먹고 내려가려고 할 때쯤 꼴찌로 도착한 것도 물론 나다.
놀라운 점은 나는 매일 같이 운동을 한다는 거다. 하루 1시간~2시간 사이로 걷거나 집 안에서 자전거를 탄다. 정말 징글징글하게 꾸준히 운동한다. 보통 실내 자전거를 사면 빨래걸이로 전락한다던데 우리 집 자전거는 엉덩이 부분이 헤졌고 주행거리는 하도 많이 타서 몇 번이나 리셋되었다.
이쯤 되면 다른 운동을 해야 되는 게 아닐까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물론 요가도 하고 수영도 배워봤다. 요가는 수업 중에 선생님이 내 이름을 너무 불러주셔서 창피해서 다닐 수가 없었다. 수영은 수영복과 쫄쫄이 모자를 써야 하는 굴욕에도 나름 재밌어서 열심히 했다. 그러나 물을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 뒤로 밀어야 하는데 내 팔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물살을 가르지 못하고 옆으로 터억 내팽개쳐져서 수영 강사님께 도대체 왜 이럴까요?라고 했더니 '팔에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열심히 했는데 결국 안 되는 체력에 악을 썼더니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와서 접영을 배우지 못하고 끝냈다.
백화점이라도 나갔다 오면 눈이 쏘옥 들어가고 멍해지는 우리 엄마를 보면 이건 유전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이모들도 어디 갔다 오면 전부 드러누워있었다. 이틀 연속 외출이라도 했다간 집에 와서 곱절은 쉬어야 체력이 회복된다. 아무래도 체력이 안되면 못하는 것도 많고 꺼려지는 것도 많아진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하게 되고 집 반경 6KM 내외로만 움직이려고 한다. 여행은 싫어하면서 세계 테마 기행 보는 건 좋아해서 메타버스 여행 같은 게 보편화되면 자주 이용할 것 같기도 하다. 직접 경험이 주는 이로움을 알지만 관찰하고 상상하는 걸 더 즐기게 되었다.
회사 다닐 시절 내가 꺼리는 것이 총망라된 해외시장조사 출장을 가게 되면(사람들이 많고 + 먼 곳) 하루 10시간을 걸어 다니며 매장 직원들 눈을 피해 몰래 사진을 찍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어디 올라가서 떨어져 죽고 싶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밝고 맑고 자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난 표정관리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고 힘들수록 짜증과 예민함이 극도로 치달았다.
다정도 체력이라 했다. 핑계의 냄새가 짙지만 나는 체력이 달리지 않을 때는 짜증을 내지 않는 밝고 맑은 인간이 되기 때문에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촉수가 있다면 꽂아서 쪽쪽 빨아먹고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촉수가 없기 때문에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체력단련 걷기에 매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