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대하여
잠자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 새벽 4시를 넘기고 아직 5시가 되지 않은 시간에 잠에서 선명하게 깬 적이 있다. 언제나 잠에서 깨는 시간이 더디던 내가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단박에 눈이 떠지던 그날.
오늘도 어제와 같고 이틀 전과 같고 삼일 전과 같은 날이 이어졌다는 사실과 어쩌면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될 것이라는 절망감이 나를 짓눌렀다. 폭신한 침대에 있다간 더 깊은 곳으로 묻혀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엎드려 두 손을 포개고 그 위로 머리를 얹었다.
팔꿈치를 펴서 손바닥으로 바닥을 받치고 몸을 일으켜 창 밖을 봤다. 그대로였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주먹으로 가슴을 수없이 내리쳤다. 그래도 가슴이 죄여 오는 것은 막지 못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외로웠다.
'먼동이 트려 할 무렵'
시작, 의지, 열정 같은 것을 표현하는 긍정적인 워딩들과 흔히 엮이지만 내게 새벽은 아직은 내가 잠들 수 있는 시간 그 이상 이하의 의미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새벽이 무서워졌다. 마주치지 않으려 아직도 애쓰고 있다.
일상적으로 따라다니는 외로움은 사람을 들뜨게 하는 면이 있다. 그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하고 어쩔 때는 달콤한 맛을 느끼게도 했다. 그래서 감히 그것에 익숙해져 있다고 자만했던 것 같다.
7년 전에 남편이 혼자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다. 혼자 점을 보러 갔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지만 점괘의 내용은 더 했다. 우리의 궁합이 썩 좋지 못하다는 건 결혼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무당께선 3~4년 안에 이혼을 하게 된다고 했다.(*실제로 4년 뒤에 우리는 이혼 직전까지 갔다)
내 사진을 보고선 기가 매우 세고 입 끝에 악이 서려있다고 했다.(악이 서려 있다니?!) 평생 외로울 팔자라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며 감수성이 필요한 예술과 창작 분야에서 뛰어난 두각을 보여 명예롭고 화려한 삶을 살 수 있으나 외부 에너지보다는 내적 에너지를 갈망하기 때문에 스님, 목사 뭐 이런 분야가 맞다고. 아니 나는 무신론자인데.
암튼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예술가든 스님이든 목사든 간에 나는 고독하고 외로울 팔자라는 것이었다. 외로움을 하루 세 번 양치질하듯 매번 느끼고 있었던 걸 모르지 않았지만 남의 입으로 그것도 무당의 입으로 듣게 되니 그건 명백한 사실로 확정 지어진 것 같았다. 악이 서린 입으로 남편에게 화풀이를 했다.
외롭고 싶지 않다. 솔직한 내 마음은 그렇다. 그렇다고 외롭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 깊이와 넓이는 모두 다르겠지만 외롭지 않은 인간이 있던가? 외로움이 내 팔자라면 더 넓어지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어도 그날, 새벽 4시를 넘기고 5시가 되지 않았던 그 시간의 외로움같이 깊어지지 않으려 무당의 말처럼 마음을 다스린다.
할 수 있는 건 일상의 루틴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뿐이다. 매일 조금씩 흐트러지는 집안을 정리하고 식사 후엔 바로 설거지하고 양치질한다. 아프지 않은 이상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한다. 찬바람으로 끈기 있게 두피까지 바짝 말리고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는다.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하다 보면 이 조차도 해냈다는 위안을 얻는다. 변하지 않는 현실에 절망할 때도 변함없는 루틴으로 생활하면 적어도 이것보다 더 최악이 되지는 않겠다는 예측 가능한 내일에 대한 안정감이 든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