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고 있어

나의 꽃과 열매

by 윤비

2021월 11월 15일 나의 집을 방문한 5살짜리 박나윤. 아이스크림 1개를 더 먹겠다고 울부짖던 아이를 달래려 베란다에 심어놓은 토마토를 보여줬다. 아이는 금세 울음을 뚝 그치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 근데, 가을인데 토마토가 열릴까?’


나는 실내에선 뭐든 심으면 바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의 말에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 ‘그.. 그런 거야? 나윤아?’ 뭐든 그냥 꽃피고 열매를 맺는 일은 없는 거구나.





지난주 그 토마토 나무에 조그만 토마토가 2알 열렸다. 아무래도 봄이 오려는 것 같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계절이 바뀌는 것이 아쉽지 않았다. 나는 항상 견디고 있었기 때문에 현재를 빨리 과거로 만들고 싶었다. 버릇처럼 되뇌었다. 시간아 좀 빨리 가라고. 사는 건 매번 너무 고달파서 나는 다음번 생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고. 굳이 태어나려면 먼지 같은 걸로 태어나서 아무 감정도 느끼고 싶지 않다고.





매화꽃이 피었다. 지난여름 인정사정없는 전지로 처참하다 못해 비참해진 몰골로 오도카니 서 있던 매화나무였다. 더 건강하게 키우기 위함이 아니라 죽이려고 한 것 같았다. 남편과 나는 그 나무 곁을 지나갈 때마다 어쩜 애를 저 지경을 만들어 놓을 수 있냐며 분개했다. 나는 더 이상 그 나무가 꽃을 피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꽃이 피었다.


오랜만에 시간이 빨리 지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이 한없이 소중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 나는 꽃을 피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직 퇴사 전의 생활과 상처, 무기력한 직장인의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하고 무엇을 꽃피우고 어떤 열매를 맺고 싶은지 모르고 있다.


다만 계속해서 쓰고 있다. 쓰는 일은 묘하게 치유가 된다. 사랑이라 생각했던 감정에 비굴함을 발견하고 비굴함 속에 있던 비열함도 발견하면서 내 진짜 감정을 이해하게 되고 나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발견할지도 모른다. 나의 꽃과 열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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