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귀엽고 저릿하고 사랑스럽게
회사에서 썼던 석영관 히터와 전기 찜질기를 하루 종일 끼고 살고 있었다. 며칠 만의 바깥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따뜻해서 경량다운 2겹을 껴입고도 장갑을 낄까 말까 고민했던 것이 어이없게 느껴졌다. 아파트 출입문을 나서자 하얀 꽃잎이 바람에 흩날렸다. 매화 꽃잎이다.
모과나무에 싹이 텄다. 모과나무의 갈색 껍질이 벗겨진 자리엔 푸른 자국이 드러나는데 이것들이 독특한 패턴을 만들어낸다. 마치 얼룩덜룩한 군복을 입혀놓은 것 같다. 나는 이 나무의 매끈한 촉감을 좋아한다. 조만간 분홍색 꽃이 피고 커다란 모과가 열리겠지.
그 모과 열매가 탐이 나서 남편과 서리를 나간 적이 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기다란 나무 작대기를 휘둘렀는데 그렇게 땅에 떨어진 모과 열매는 하루만 지나도 시커먼 멍 자국을 만들었다. 그 뒤로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바뀌어있다. 온통 검은색으로 몸을 휘감은 내가 튈 정도다. 나는 언제나 한 박자 느리다. 땀이 차서 입고 있던 경량다운 1겹을 벗겨내서 허리춤에 묶었다. 그래도 까맣다.
바닷속에는 해초들이 그득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비릿하고 짭조름한 해초 냄새도 함께 밀려온다. 이맘때가 1년 중 해초 냄새를 가장 진하게 맡을 수 있을 시기다. 이 냄새를 좋아한다.
바닷가에는 멀리서 떠밀려온 해초들이 뒤엉켜 있다. 들이치는 파도를 피해 가며 모래사장 위에 안착한 해초들을 구경했다. 뾰족한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모두 부드러운 커브를 가지고 있다. 해초들은 유려한 곡선의 집합체다.
갈매기들을 구경했다. 몰래몰래 조심조심 갈매기들 뒤에 앉아있는데 조그만 것들이 뛰어와서 갈매기를 쫓아낸다. 날아오른 갈매기들이 다시 모래사장 위에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그들 뒤에 몰래몰래 조심조심 앉았다. 관찰 결과 갈매기들도 바람이 세게 불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다는 것을 알았다.
올겨울엔 아파트 상가 옆에 있는 붕어빵 가게가 문을 닫아서 붕어 한 마리도 먹지 못했다. 나는 의식처럼 ‘러브 레터’를 보면서 올해의 겨울에게 안녕을 고하기로 했다.
올해의 겨울을 이렇게 보낼 수 있게 돼서 다행이다. 이토록 귀엽고 저릿하고 사랑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