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고 맑음

온전한 행복같은 것은 없다.

by 윤비

3월 14일 월요일. 나는 봉두난발을 하고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 멍 때리고 있었다. 갑자기 삐삐삐삐삐빅 현관문열리는 소리가 난다. ‘뭐지? 왜 현관문이 열리는 거...’라고 차마 한 문장을 완성할 틈도 없이 출근한 남편의 웃는 얼굴이 보인다. ‘뭐해?’ 남편은 멍 때리는 나와 노트북 모니터를 번갈아 보더니 몸 뒤에 숨긴 분홍빛 장미 꽃다발을 건넨다.


나는 두 눈과 입과 콧구멍, 그러니까 얼굴의 구멍은 전부 다 동그래졌다. 그렇게 봉두난발을 한 여자가 우와 우와만 외치는 사이 남편은 의기양양한 웃음을 짓고 바로 회사로 뛰쳐나갔다.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남편의 뒤를 쫓아 반쯤 닫히려는 현관문에다 대고 고맙다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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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도 들켰던 사람이 이번엔 나에게 들키지 않았다. 한치도 움직이지 않으려던 내 머리와 몸뚱이에 활력이 돈다. 서둘러 장미꽃을 손질해서 화병에 담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장미꽃도 좋아해?’라고 물어봤었다. 나는 장미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응. 꽃은 다 좋지’라고 대충 대답했었다. 그런데 나. 장미꽃 좋아하는구나.


포근했던 화요일에는 바닷가 산책을 했고 수요일에는 베란다에 앉아 당분간 볼 수 없을 햇볕을 쬐었다. 베란다는 햇빛이 가득 찬 온실 상태가 되어 금세 얼굴이 달아오르고 노곤한 상태가 되었다. 오래간만에 죄책감 없는 낮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온기를 잃지 않으려고 일부러 햇볕이 내리쬐는 창가 쪽 소파에 누워 3시간을 잤다. 아이처럼 땀을 뻘뻘 흘려서 입고 있던 옷이 축축해지고 몸은 개운해졌다.


어제부터 흐리고 다음 주 내내 흐리거나 비가 온다. 나는 어제부터 그리고 다음 주 분까지 이미 흐리다. 두툼한 식빵을 구워서 크림치즈를 바르고 당근 라페를 얹어 먹었을 때 잠깐 맑았다. 들기름 국수와 마파두부를 해 먹었을 때도 웃었네. 그렇다. 먹을 때만 반짝 맑은 상태. 짐승 같은 상태다.


요즘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바닷가에 떠내려온 해초를 찍거나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것 따위가 전부다. 음악도 듣지 않는다. 그동안 정적이 익숙지 않아 ‘24시간 편안한 재즈’ 같은 것을 들었었다. 취향에 맞지 않는 선곡엔 거북함을 느끼면서도 하루 종일 틀어놨는데 이젠 밖에서 간간이 들리는 소음과 집안의 정적이 더 편안하다. 마음이 평온하다. 아마도 이 상태가 행복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주에는 코로나 걸린 남편을 돌보느라 진이 빠졌고 대선 결과에 절망했었다. 그리고 몇십 년 만에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서 우는 엄마를 보았다. 그날 이후 엄마의 모습을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올린다. 나는 그때 똑똑한 척하지 말고 무조건 엄마를 안아줬어야 한다고 의미 없는 후회를 하고 있다. 그렇게 엄마 앞에서만은 못돼 처먹지 말자는 지켜지지 않을 다짐을 또 한다.


‘리틀 포레스트’에 먹구름과 푸른 하늘이 반으로 갈려져 있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나는 평생을 그런 상태로 살아온 것 같다. 물론 먹구름이 많은 날도 푸른 하늘이 많은 날도 있었지만 언제나 맘 한편에 먹구름의 존재를 떨쳐버리지 못한 채로 그렇게. 온전한 행복을 누린다는 것은 나에겐 힘든 일이고 그걸 바란 적도 없다. 온전한 행복 같은 것은 없다.


그냥 푸른 하늘이 많은 날에는 푸른 하늘을 보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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