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늦여름.

불안은 계절과 같이

by 윤비

평소 산책 중 우리의 대화라는 것은 또 방구냐. 방구는 좀 사람 없을 때 시도해라. 알겠다. 그럼 방구 신호를 주겠다. 엄지 척! 하면 방구다. 그땐 엄지를 눌러줘야 한다. 그때 뀌겠다. 뭐 이딴 것을 주로 이야기한다. 그러던 남편이 4월의 벚꽃이 만개한 어느 날 너는 지금 어디쯤 와있는 것 같냐고 물었다.


(당황) 음... 글쎄 늦여름? 정도 되려나?

아직 여름이네? 그럼 나는 가을 초입인가?

근데 내가 만개한 적이 있었을까?

너무 찰나의 순간이라 네가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아니면 나는 배롱나무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지.

백일홍?

어. 백일홍. 근데 노인이 된다고 겨울일까? 계속 늦여름일 수도 있잖아.

그건 모르지.

그래 모르겠다.


나의 겨울은 10대~30대 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만일 노인으로 살 수 있게 된다면 그땐 어떤 계절을 보내고 있을까. 운이 좋아 다시 한번 봄과 여름을 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 분명 또 다른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그 겨울 때문에 나는 항상 불안했고 불안하다.


불안은 나를 계획하는 인간으로 만들었다. 그것으로 불안을 견딜 수 있었다. 계획에서 벗어나거나 예상치 못한 일에 부딪치면 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특히 그 변수가 내가 아닌 타인으로 발생했을 땐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 그것이 얼마나 사소하고 중대한 일인가는 상관없었다. 다만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는 사실, 그것만으로 화가 났다.


가슴속에 불씨를 품고서 언제든지 불타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입김에도 금세 활활 타올랐기 때문에 이런 내가 괴물 같다고 생각했다. 이 괴물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남들에겐 별 것 아닌 일도 나는 그렇게 유연하게 대처하기가 힘들었나 싶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은 내 미래를 불행하게 만든다 생각했었다. 내 미래를 불행하게 하는 사람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불안을 견디는 일이라 생각했을 때는 그랬다. 여전히 불안은 내 곁에 있다. 지금의 나는 불안은 새삼스러운 감정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견디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려고 한다. 살아있는 한 느껴야 할 당연하고도 익숙한 감정.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늦여름이라 생각하는 요즘 진짜 여름이 오고 있다. 올해 여름은 어쩐지 조금 더딘 것 같다. 집 안에만 있어서 그런 걸까. 이제야 겨울옷을 정리하고 여름옷을 끄집어냈다. 여름옷들은 내 기억보다 훨씬 더 알록달록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몇 번씩 돌아가며 입었던 출근복들. 올여름 이 옷들을 각각 한 번이라도 입고 나갈 수 있을까? 나는 이제 이 옷들의 쓸모가 없어진 것을 알았지만 모두 꺼내어 옷걸이에 걸었다.


갑갑해서 밤마다 발로 쳐냈던 구스다운 이불과 보들보들한 극세사 시트, 거실의 담요를 죄다 빨아서 널었다. 린넨 홑이불을 꺼내어 코를 대고 킁킁거리니 작년의 섬유유연제 냄새가 난다. 이제 쌀랑한 새벽 공기를 까슬까슬하게 덮어주는 이불의 감촉을 만끽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다이닝 테이블 아래 깔아 둔 울 카펫을 걷고 대나무 카펫을 깔았다. 발바닥의 감촉이 비로소 여름을 실감 나게 한다.


그러면 되는 거다. 다시 가을이, 겨울이 오면 여름옷들을 정리하고 가을옷과 겨울옷을 끄집어내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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