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야수본능
가족들과 배 위에서 물고기 떼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어 무리가 줄줄이 엮여 올라왔다. 방어들은 지폐 한 장이 들어있는 투명 비닐백을 옆에 끼고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보고 몹시 흥분했는데 갑자기 저 아래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그림자가 방어 떼를 덮쳐버리는 바람에 돈과 방어 떼 모두를 놓쳤다.
이것은 단타 한번 쳐보려다가 쳐 물려 버린 어제의 내 심정을 대변한 꿈일까.
주식을 하고 있다. 정확히 2021년 1월 11일 월요일 아침 버벅거리는 증권 앱을 기어이 실행시켜 고공행진 중인 삼성전자를 92,307원에 2000만 원 사버린 여자다. 그것뿐이 아니라 같은 날 SK이노베이션을 297,500원에 1000만 원 샀다고 하면 믿겠는가. 주식을 한 첫날 말이다.
소심한 내가 주식을 할 때는 쓸데없이 대범한 여자였다. 친구의 친구의 어머니의 친구의 아들의 정보로 작전주를 2500만 원 매수했고 그것은 현재 -35%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이것 또한 올해 1월에 샀던 주식인데 세력들아 언제 작전할 거니? 혹시, 안 하는 거니?
권나원의 남편은 우리를 향해(그렇다. 친구들 전부 매수했다.) 집에 호랑이를 키워도 너네처럼 꽉 물리진 않을 거라 비웃었다. 하지만 난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 대범하고 포기할 줄 모르며 무모한 여자다.
백수 4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행복한 것을 별개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근로로 인한 밥벌이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주식으로 용돈을 벌어보자는 심리가 날 단타의 세계로 이끌었다. 단타를 쳐 보기로 결심했다.
주식을 첨 시작한 박희선이가 일주일에 18만 원씩 꼬박꼬박 버는 것을 보니 나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100만 원으로 일주일 만에 88,409원을 번 것을 계기로 단타 왕이 되기로 했다가 또 쳐 물렸다. 단타 2주 만에 나는 단타 왕을 포기한다.
18년의 직장생활 동안 월급의 70~80%를 저축한 근검, 절약의 아이콘인 내가 이젠 일확천금만을 노리는 야수가 되었다. 고정수입이 없어져서 어차피 저축도 못하고 그동안 너무 몰아붙인 탓에 돈 모으기가 진저리 났다. 그렇게 고정수입을 포기한 대신 고정적이지 않은 돈 욕심이 생겨났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내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즐겁다.
쉬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중이다. 그동안 서점에 깔린 '나를 위하는' 책들을 무시했었다. 느끼한 문장은 질색이란 핑계를 대며 내용까지 무시한 진짜 이유는 남들 시선 때문이었다는 걸 안다. 나는 좀 더 그럴싸해 보이는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상대방의 감정에 휘둘려 하루를 망치는 일이 허다했다. 상대방의 감정을 내 감정으로 착각했고 그들을 배려하려고 쓸데없는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미간에 주름이 가 있었다. 내 맘 한구석은 불편해 어쩔 줄 모르겠는데 깊숙이 들어가서 내 맘을 살피기엔 너무 피곤했다. 환경과 상황이 바뀌고 나서야 내 미간 주름의 실체를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무엇을 하든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부터가 시작이 된다. 오늘이 어떤 하루가 될지는 내 감정에 따라 결정된다. 평온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맘이 불편하지 않을지 무엇으로 행복을 느끼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너무 뻔한 말이라 다들 그걸 알고 있다 생각하겠지만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나는 그 과정 중에 있다.
멘탈이 약한 걸 들키기 싫어서 분에 넘치게 무리했다. 버거웠던 수많은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면 괴롭지만 뿌듯했다. 이 일을 즐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압박감이 사라진 지금, 그 시절의 내가 믿기지 않는다. 나는 먼지 무게의 압박감도 느끼기 싫고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은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거부감이 드는 사람이다.
스스로 한 선택 때문에 폭망의 길을 걷더라도 내가 한 선택이면 그 괴로움이 날 잠식할 정도로 커지진 않는다. 거기엔 억울한 맘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괴로웠던 것은 남이 주는 압박감보다는 내가 느끼는 억울함이었다는 알았다. 그래서 내가 주식에 쳐 물렸어도 이렇게 태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주식은 성공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