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싫어하는 사람 여기 있어요.

나만 이런 거야?

by 윤비

부모님은 우리를 데리고 주말마다 캠핑을 다녔다. 요즘의 캠핑을 생각하면 그것을 캠핑이라 칭해도 될지 모르겠다만 우리 같은 코찔찔이들을 달고 사는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과 전국의 낚시를 할 수 있는 지역은 다 가 본 것 같다.


주말이 가까워지면 또 캠핑을 가게 될까 봐 신경이 곤두섰고 언니와 나는 집에 있겠다고 드러누워 생떼를 부렸다. 가족 아닌 타인이 주는 관심이 버겁고 두려웠다. 어린 나는 그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부모님은 나의 생떼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자주 봤던 동네 아줌마가 건네는 스몰토크에도 도망치고 싶었는데 주변은 온통 그런 사람들이었고 숨을 수 있는 익숙한 공간은 없었다. 빨개진 얼굴로 쭈뼛대는 모습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었는데 그걸 온 세상에 생중계하는 기분이었다. 아빠가 낯가림 현상을 지적이라도 하는 날엔 고통은 배가 됐고 그 고통은 아빠를 향한 분노와 원망으로 바뀌었다.그 감정은 오랜 시간 두텁게 내 마음에 깔려있었다.


같이 딸려 온 미쳐 날뛰는 또래 남자애들은 시끄러웠고 밤이 되면 술 취한 어른들은 더 시끄러웠다. 딱딱하고 추운 텐트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빨리 내일이 오길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이런 내게 출장은 다시 만난 시련이었다. 경비가 회사에서 지불되기 때문에 타 부서나 일부 지인들은 해외 출장을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내겐 온 맘과 몸이 불편해지는 것이 글로벌하게 확장되어 고통도 글로벌해졌을 뿐.


미얀마의 거래처 공장을 보러 다녔을 때의 일이다. 큰 규모의 공장을 소유한 현지 사장은 상담은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저녁 식사는 꼭 같이 하자 했다. 식사 후엔 노래방을 가야 했고 어린 애인을 옆에 끼고 나타난 그는 수십 명의 여자를 불렀다. 광야 같은 노래방 사면에 그녀들이 빼곡히 들어찼을 때 그가 애인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내 옆에 앉았다. 옆의 애인이 날 새초롬한 눈으로 경계한다. 그는 실실 웃으며 내게 맘에 드는 사람을 골라 보라 했다.


쿵푸 허슬 화운사신


중국에 신규 소재 업체와 공장을 보러 갔을 때도 화운사신 같이 생긴 현지 사장이 애인을 데리고 나타났다. 저녁식사 시간에는 살아 날뛰는 새우가 들어간 독주를 권하며 아연 질색하는 나의 반응을 즐겼고 화장실을 갈 때마다 따라 나와서 내게 흐뭇한 미소를 날렸다. 졸지에 부자가 된 그들은 특히 젊은 여성에게 그들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고 싶어 했다.


유럽 출장에서는 선배들이 권력을 과시하기 바빴고 나는 그녀들의 몸종이 된 것 같았다. 제일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모든 일정을 끝내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L 혹은 그녀의 오른팔 Y가 출장 멤버들에게 몇 분 안에 술과 안주를 들고 다시 모이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럼 다들 씻을 틈도 없이 신경을 쓴 티가 팍팍 나는 안주들을 가지고 밤늦게 숙소에 모인다. 그렇게 청결이 의심되는 바닥에 동그랗게 앉아 새벽까지 술자리가 이어진다.


주로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를 쳐 주거나 게임을 한다. 나는 게임을 저주하지만 지면 술을 마셔야 하므로 필사적으로 한다. 다들 어찌나 필사적인지 초성게임에서 ㅈ ㅈ 이 나왔을 때 어떤 이는 평소 사람들 앞에서 절대 뱉을 수 없는 그 단어 ㅈ ㅏ ㅈ l 를 외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들은 우리의 표정과 태도를 지켜보며 누가 더 평정심을 유지하고 최선을 다해 몸종 짓을 잘하는지 평가한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얼마나 자신에게 어필하는 가를 보는 것이다. 당연히 나는 이 평가에서 눈밖에 났다. 열심히 웃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몸종은 유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관람할 마음의 여유와 틈 따윈 없는 것이다. 그저 이 지옥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뿐.


그렇게 어릴 적의 캠핑과 출장 경험으로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여행마저 꺼리게 되었다. 지금껏 자의로 간 여행은 열 손가락 안에 곱는다. 몇 번 안 되는 지난 여행의 여운을 곱씹는 걸 보면 여행의 즐거움을 모르는 게 아닌데 퇴사 5개월이 지나도록 어떤 시도도 하지 못한다.


날짜를 정하고 비행 편을 알아보고 숙소만 예약하면 아름다운 제주 풍경을 두 눈으로 즐길 수 있는 건데 내 욕구는 비행 편을 알아보는 순간 사그라들기 시작하고 이내 코로나 핑계를 대며 집에 있어야 한다고 설득하기 시작한다. 아늑했던 집이 더 아늑하게 느껴지고 집 밖으로 나가려 했던 것은 미친 짓이라 확신하게 되면서 두 눈에 번뜩한 생기가 돈다. 그렇게 여행은 아직 끝내지 못한 숙제처럼 맘 한구석에 켜켜이 쌓여간다.


아아 정말이지 나는 여행 고자가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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