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딩크가 아니라니

Single Income, No Kids

by 윤비

불현듯 이제 딩크(Double Income, No Kids)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내가 백수가 되었기 때문인데 그럼 우린 싱크(Single Income, No Kids)족인 건가?

(*싱크족은 결혼 적령기를 넘겼으나 의도적으로 결혼을 미루는 사람들이나, 아이를 갖지 않는 외벌이 부부를 일컫는 말이다.)


지금껏 '내가 바로 딩크족이다!'를 어필하며 살지도 않았고 그런 분류법으로 '족'을 붙이는 것은 좀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가 돈을 벌지 않으니 딩크족, 싱크족 같은 것들이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닌가.


발단은 그랬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싱크족 아내가 남편에게 가사분담을 요구하는 글을 봤는데 댓글엔 아이도 없이 식충이처럼 사는 네가 남편에게 가사분담을 요구할 권리가 있느냐, 남편이 왜 널 부양해야 하는 거냐 뻔뻔하기 그지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그 댓글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나를 보았다.


일을 그만두고부터 거의 모든 집안일은 내가 맡고 있지만 남편이 가사노동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맞벌이든 외벌이든 간에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집에서 오직 한 사람이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것이 더 비상식적이고 이상한 일 아닌가?


그럼에도 하루 종일 그 댓글들이 신경 쓰였던 건 내가 돈 벌지 않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해서 일주일 이상 쉬어본 일 없이 18년 동안 돈을 벌었고 이제 고작 6개월 쉬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오냐오냐 했지만 사실 부끄러움의 감정은 백수가 된 날부터 스 느껴왔다.


내 선택이 후회스럽다거나 다시 일하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지금 삶이 내 생애 중 가장 행복한 시기라는 건 틀림이 없다. 다만, 나는 그 행복의 뒤편에 숨어서 앞으로의 삶을 회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이 행복은 분명 남편이 없다면 없을 행복이라는 사실 그것이 날 부끄럽게 한다. 언제까지나 남편을 내 밥벌이로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돈을 벌지 않았던 6개월 동안 당황스럽던 순간들이 있었다. 병원을 갔을 때 건강보험에 남편의 피부양자로 등록되어 있을 때가 그랬고 온라인으로 계좌를 만들 때 직업란에 회사원이 아니라 무직과 주부 중 무엇을 체크할지 고민할 때가 그랬다.


낮시간에 마트를 갈 때면 손님들이 온통 중년의 아주머니나 할머니 할아버지인 것에 놀라며 젊은 사람을 찾아 이리저리 눈알을 굴릴 때가 그랬고 거리에서 양복 입은 회사원들이 커피를 들고 내 곁을 스쳐 지나갈 때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대단하지도 않은 회사에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면서 돈 버는 자의 우월함에 빠져있었다는 걸 알았다. 돈 버는 유세를 떨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13년 동안 주부였던 내가 전업주부가 된 사실을 이렇게 부끄러워할 리가 없다. 전업주부인데도 백수라 칭하는 것에 더 당당했다. 나는 전업주부인 우리 엄마에게도 이렇게 가식을 떨면서 살아온 것이었나.


그러나 다시 나를 오냐오냐해본다. 18년 동안 회사원이었다. 아직 회사원이 아닌 다른 역할이 어색하고 너는 조금 불안할 뿐이라고. 너 그렇게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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