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기준
1년 365일 중에 가장 자주 하는 생각은 '부자가 되고 싶다' 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이 생각은 일상생활 전반에 너무도 당연하게 스며들어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의식을 치르듯이 로또를 구매하고 있다. 집 앞에 1등 당첨 로또 판매점이 있지만 언제나 온라인 '동행 복권'을 이용한다. 밖에 나가는 것이 귀찮다는 명목으로 나조차 속이려 하고 있지만 사실은 1,000원 치만 사는 것이 너무 부끄럽기 때문이다. '로또 자동하나요'라고 말하는 내 모습이라니.
월요일 아침은 로또를 확인하는 날이다. 그렇게 매번 '당첨되면 어쩐다지' 설렘을 느끼며 클릭하고 실망한다. 당첨되면 남편에게 G바겐을 사주기로 했는데 안 되겠네 또 하루 종일 핸드폰 붙잡고 G바겐 타령하고 있는 꼴을 봐야겠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1,000원 치의 로또를 사고 다음 주 월요일을 기다린다.
부자 욕구는 마트에서 절정을 찍는다. 평소 냉장고에 음식이 가득 차 있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집에서 장바구니 하나만 들고 가도 충분히 담아올 수 있을 정도만 구매한다. 스스로를 합리적인 소비자라 치켜세우고 있지만 이것 또한 나를 속이는 행동이다. 사실은 드라마에 나오는 사모님처럼 여유롭게 카트를 끌고 다니며 다섯 걸음에 하나씩 진열대의 물건을 무심하게 집어 들어 카트에 툭. 내려놓고 싶다.
마트에 가면 채소-> 두부/계란-> 정육-> 유제품/냉동식품-> 밀 키트->라면->주류 코스로 돈다. 첫 번째 채소 코스에서부터 고뇌는 시작된다. 쌈채소 몇 장에 5,000원이다. 재빠르게 고기는 쌈에 싸 먹어서 뭐하냐며 4,000원 이하의 채소를 찾아본다. 그런 채소는 없다. 같은 4,000원짜리 중에서도 제일 용량이 많은 채소를 찾기 시작한다. 주로 양배추가 선택된다. 양배추는 쪄서 쌈 싸 먹고 생으로 샐러드도 해 먹고 계란하고 부쳐서 토스트 사이에 껴 먹을 수 있다고 나를 설득한다.
다음은 두부/계란 코스다. 이 코스에는 보통 매장 직원이 상주하고 있어서 특정 제품을 권하는데 나는 그분의 제스처를 최대한 예의 바른 몸짓으로 피해서 제일 싸고 큰 1KG짜리 두부를 집어 든다. 단 한 번도 비싼 유기농 제품을 사 본 적이 없다. 계란 역시 마찬가지다. 동물복지 1등급의 자연방목 건강한 계란이 사고 싶지만 언제나 30구짜리 제일 저렴한 계란을 집어 든다.
정육 코스는 의외로 고뇌에 휩싸이지 않는다. 당연히 한우는 살 수 없는 고기이기 때문에 미련 없이 호주 청정육과 돼지고기 코너로 가서 살코기 위주의 제품을 고른다.
유제품과 냉동식품, 밀키트 코스는 눈이 호강하는 유희 코스다. 천천히 어떤 제품이 있나 구경하고 어떤 맛일지 상상한다. 세상 참 좋아졌구나를 연발하며 하지만 맛은 없을 테니 살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혼자서 모노드라마를 찍는다.
라면은 단연 안성탕면이다. 이것은 양배추와 같은 논리인데 안성탕면은 김치를 넣은 김치라면에도 잘 어울리고 땅콩버터를 한 숟갈 넣으면 탄탄면의 느낌이 나고 고추장과 설탕을 넣으면 라볶이로 변신하기에 적합한 라면이다.
주류 코너에선 요즘 인스타에 떠도는 패키지가 예쁜 와인들을 찾아보는 척하다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어쩔 수 없지 하면서 맨날 사던 9,900원짜리 디아블로 쇼비뇽 블랑을 한 병 산다.
아아 적고 보니 눈물 나는구나.
남편처럼 G바겐을 사고 싶다거나 명품쇼핑이나 비싼 레스토랑을 맘껏 갈 수 있는 부자가 아니라 대형마트에서 가격표를 보지 않고 원하는 제품을 척척 거리낌 없이 살 수 있을 정도의 부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