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코로나에 걸렸다.

제길, 또 '환자 왕'이 돌아왔구나

by 윤비

핸드폰 너머 남편의 목소리가 걸걸하다. 불안한 기운이 엄습해 온다. ‘나 아무래도 아픈 것 같다’ 고 한다. 역시나 내 예상은 들어맞았다. 제길. 또 ‘환자 왕’이 돌아왔구나.

남편은 잔병치레가 많은 체질이다. 계절마다 감기에 걸린다. 나는 매사 골골하는 것치곤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체질이라 회사에서 같은 팀원 9명이 독감에 걸릴 때도 유일하게 혼자 살아남은 전력이 있을 정도다.

사실 며칠 전부터 허리가 아팠다. 이건 엄마 집안의 고질병인데 그들 모두가 허리가 아프다. 나 역시 그 고질병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최근에 집안에만 있다 보니 다시 허리가 나빠졌다.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죽을 한 냄비 끓였다. 남편은 아플 땐 흰 죽과 김치만 먹는다. 아마 그것을 먹고 회복했던 기억이 확신으로 번진 모양이었다. 하루 종일 토스트 한쪽만 먹어서 나도 죽을 먹을 요량으로 참치 야채죽을 끓였다.


왕이 오셔서 죽을 내어 드리고 시중을 들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먹을 것을 대령하라 해서 버터에 식빵을 굽고 계란 프라이와 수제 햄을 구워서 착착 올린 다음 왕의 취향에 맞추어 케첩을 찹찹 뿌려서 우유와 함께 내어 드렸다.

남편은 먹고 나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없다. 움직일 때마다 남편을 향해 에구구구 아이고 허리야를 내뱉어봤지만 내게 관심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내 신경은 뾰쪽하게 곤두서기 시작했다.

왠지 코로나일 것 같았다. 이튿날 출근한 남편에게 자가진단 키트를 하나 사고 ‘센스가 있는 사람이면 내 허리에 붙일 파스도 하나쯤 사 오는 게 어때?’라고 말했다.


점심시간 즈음 남편은 내게 전화를 걸어 약국인데 파스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나는 빡쳤다. 그것은 일전에 내가 백신 부작용으로 끙끙거릴 때 ‘응급실 가자’가 아닌 ‘응급실 갈래?’라고 말해서 날 빡치게 만든 것과 동일한 빡침이었다. 코로나 결과는 음성이었다.


하지만 아픈 것은 아픈 것이다. 퇴근해서 온 남편을 돌보고 그다음 날은 휴일이라 삼시 세 끼와 간식, 약과 뜨거운 물을 수시로 나르고 치웠다. 그리고 하루 종일 지켜본 결과 남편은 누워서 쉼 없이 게임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아픔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나는 냅따 소리를 질렀다.

너는 어쩜 내가 허리가 아파서 에구구구 하는데 허리가 왜 아프냐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는 것이냐 너는 네 아픔만 보이고 내 아픔은 안 보이냐 나는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도 널 간호하는데 어쩜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 하냐 다다다다다다


남편은 폭탄을 맞은 것 마냥 멀뚱멀뚱 쳐다본다. 아픈 사람한테 그렇게 악다구니를 쓰냐며 ‘너는 악마인 거야?’라고 말하는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나는 악마가 뭔지 어디 한번 맛봐라 하며 맘속의 말들을 쏟아내다가 그의 노랗게 뜬 얼굴과 눈가에 내려앉은 다크서클이 눈에 밟혀 말하기를 그만뒀다.

그렇게 한참 동안 우리 둘 사이에 침묵이 흐르고 난 뒤 베란다에 걸어놓은 태극기를 회수하며 거실로 들어온 남편이 말했다.


나는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이야. 너는 아플 때 엄마가 아이고 어쩌냐 걱정이 돼서 난리였겠지만 난 아프면 혼자 아프고 마는 게 익숙하다고 나는 사랑 못 받고 자라서 이래. 사랑받고 자란 너랑은 달라.

남편이 치사하게 치트키를 썼다. 그럼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남편이 불쌍해진다. 남편은 분명 그것을 알고 있다. 아무 대꾸하지 못하는 나는 다시 환자 왕의 시중을 들었다.


두 번째 코로나 자가진단 결과 남편은 양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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