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동거인이 코로나에 걸렸지만 나는 멀쩡했다. 확진 후 3일 정도는 따로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가까이 있을 땐 마스크를 썼다. 친구들은 확진자를 방안에 가두거나 가까운 전염병 수용소(=생활 치료소)에 보내버리라고 했지만 남편은 이미, 몹시, 서러운 상태라 불가했다. 4일째 되는 날부터는 어차피 전염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아 평소대로 지냈다.
PCR 검사를 받지 않고 스스로 격리돼서 2주 정도 집에만 있을 생각이었다. 그것은 집순이인 내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남편이 검사를 받자고 들볶는 바람에 보건소에 갔다. 대기줄이 담벼락을 타고 끝도 없이 이어졌는데 그동안 얼마나 일이 익숙해진 건지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차례가 왔다. 역시 한국인들.
무증상 감염자라고 예상했는데 다음날 ‘음성’ 판정 문자를 받았다. 이왕 코를 찔린 김에 양성 판정을 받고 생활지원금도 받아서 주식해야지 같은 엄청난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다.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체질과 연관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웬만해선 감기에 걸리지 않고 걸려도 놀라운 회복력을 보였다. 어쩌면 이 전염병으로부터 끝까지 벗어날지도 모르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남편은 나의 음성 소식에 역시 독한 여자라며 혀를 내두른다. 둘이서 이렇게 24시간을 일주일 동안 같은 공간에서 보낸 적은 처음이다. 단언컨대 우리는 하루 중 저녁~밤 시간 정도만 함께 지내는 사이가 적합했다.
다이닝룸에 앉아 지켜본 확진자는 매일 머리에 난 여드름 딱지를 뜯어서 눈으로 확인하고는 거실 바닥에 휙 던졌다. ‘어이 거기 지금 뭐하는 짓이지?’라고 소리치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멋쩍게 웃는다. 그 후론 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몰래 버리려다 들켰고 그 짓을 일주일 내도록 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배에 손을 갖다 대고 동그라미를 그리듯 쓰다듬으며 아련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소리 내지 않고 ‘배. 고. 파’라고 입만 뻥긋거리거나 기운 있을 땐 배고프다고 소리친다.
카레, 볶음밥, 오징어무침, 돼지고기 김치찜, 된장찌개, 쑥국, 김치 콩나물국, 김치전, 양배추 토스트, 김치말이 국수, 두루치기, 잡채, 국물 떡볶이 등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는 다 한 것 같다. 아 이제 요리 따윈 지긋지긋하고 남편 이야기만 쓰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내일이면 드디어 해방이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