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니?
마지막 ‘썸’은 18년 전이었다. 18년 된 썸 따위는 적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지만, 씨간장 같은 케케묵은 썸이라도 끄집어내서 누군가의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었던 나를 기억하고 싶은 밤이다. 그렇다. 밤이다.
그 시절의 나는 먹이를 쫓는 하이에나 같았다. 심지어 초등학교 동창회까지 기웃거렸다. 이미 그들만의 커뮤니티가 형성된 모임이었는데 하이에나는 그들 사이에 앉아 원래부터 친한 사이인 것처럼 태연히 술을 마셨다.
나는 2명의 남자가 연락을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대화는 즐거웠지만 절대로 키스는 못할 것 같은 남자 1은 굉장히 적극적이었고 대화를 하지 않아도 관심이 갔던 남자 2는 미적지근한 주제에 연락은 꾸준히 해왔다. 항상 그렇다. 그러나 나는 생애 처음으로 2명의 남자로부터 동시에 관심을 받는 상황에 흠뻑 취해있었다.
남자 1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동창들에게 말한 모양인데 남자 2는 그걸 게의치 않았다. 경쟁하듯(세상에!) 남자 1과 남자 2가 함께 나를 집까지 배웅해준 적이 있었는데 남자 1은 어떻게든 나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으려 했고 남자 2는 내 곁을 벗어나지도 가까이 오지도 않고 그렇게 주변을 맴돌았다.
남자 2의 표현 방법은 그랬다. 내가 파마를 망쳐서 아줌마 같다는 말을 하면 그땐 아무 말하지 않다가 늦은 밤 뜬금없이 ‘아저씨는 아줌마를 좋아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ㅋㅋㅋㅋㅋㅋㅋㅋ글에 ㅋ를 쓰지 않으려 하는데 ㅋ를 쓰지 않을 수가 없구나. 하지만 그때 무척 설렜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음악 취향도 비슷하고 대화가 즐거운 남자 1을 남자 2보단 자주 만났다. 그 애가 이미 나와 사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것을 인정하는 바이다. 나는 그냥 그런대로 내버려 두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는 느낌을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남자 1은 담배 한 번 펴 보고 싶다고 그냥 던진 말에도 바로 뛰쳐나가서 담배를 사 와 불까지 붙여주었다. 내가 하고 싶다는 건 뭐든 해주고 싶어 했다.
어떻게든 손 한번 잡아보려는 그 애의 맘을 알았지만, 요리조리 몸을 피해 그 어떤 터치도 허용하지 않았다. 골목길을 걷다 지나가는 오토바이로부터 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려 해도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해서 쏜살같이 도망쳤다.
그게 끝이다. 남자 1은 나의 어장관리에 지쳐 떨어져 나갔고 나는 미적지근한 남자 2의 태도에서 그 이상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분명 남자 2를 더 좋아했는데 남자 2와의 마지막은 기억나지 않고 남자 1의 마지막 작별인사만 또렷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오랜만에 만난 그 애는 자포자기의 얼굴을 하고선 본인은 예전에 한 달 내도록 여자 친구와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섹스만 했다는 말을 전했다. 나중에는 옷 입는 것도 귀찮아서 아예 벌거벗고 지냈다고. 밥 먹고 섹스하고 잠자는 패턴을 무한 반복했다고 했다. 나는 ‘피임은 했냐? 대단하네. 피곤했겠다.’라고 말해주었다. 남자 1의 눈빛이 나를 향해 말을 했다. ‘역시 나쁜 년이네’
남자 1이 다시 연락 온 것은 내가 결혼하고 한 달 뒤쯤이었을 거다. 퇴근길 운전 중에 걸려든 전화를 받고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으며 ‘아, 근데 나 한 달 전에 결혼했어.’라고 말했다. 그 애는 아주 태연한 척했지만 당황스러움이 느껴지는 축하 인사를 건넨 뒤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지금도 궁금한 것은 그 애는 왜 한 달간의 고행과도 같은 섹스 일화를 내게 말한 것일까. 단지 성적 수치심을 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이제 나는 그런 걸 너에게 말할 만큼 널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 말을 들은 내가 차라리 자기를 진저리 치게 싫어해 주길 바란 걸까.
분명한 건 너 날 너무 순진하게 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