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소비 습관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기

by 윤비

나는 도저히 입고 나갈 용기가 없는 옷을 사는 어이없는 습관이 있다. 이것은 주로 여름에 자행된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몸에 딱 달라붙는 니트 원피스, 스치기만 해도 따가운 반짝이 소재 바디슈트, 등이 2/3쯤 드러나는 블랙 드레스, 엄청나게 짧은 기장의 프릴이 마구마구 달린 꽃무늬 원피스 따위를 산다.


1년에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다음 해에 바로 버리는데 이 옷들만큼은 버리질 못한다. 그것들은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드레스룸에서 주기적으로 내 몸에 입혀진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이 옷들을 입고 나갈 용기가 생길 거라고 믿거나, 이런 옷을 입겠다고 구매한 나는 참 용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관광지에 사는 덕에 사람들의 파격적인 옷차림을 자주 목격한다. 온몸에 문신을 휘두르고 수영 팬티만 입고 동네 산책하는 아저씨도 봤다. 자기 몸에 자부심이 있는 남자들은 곧잘 벗고 다닌다. 그리고 여자들은 몸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들은 볼록한 배가 딱 달라붙는 크롭티를 가슴 위로 말려 올라가게 해도 개의치 않고 허벅지의 셀룰라이트와 엉밑살이 훤히 드러나는 핫팬츠를 입는다. 레깅스를 입고 Y존을 가리는 것보다 레깅스와 브라탑의 조합을 더 많이 목격한다. 여름이니까 시원한 옷, 운동하기 편한 옷, 내 맘에 드는 옷을 입겠다는 명쾌한 목적으로만 옷을 입는 것 같다. 그건 자기 몸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라.


최근 내 시선을 잡아끌었던 것은 속옷 노출 패션이었다.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팬티 밴드가 바지 위로 드러나는 것은 파격적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청바지 지퍼를 끝까지 내리고 청바지 허리 단을 접어서 골반에 아슬아슬하게 걸쳤다. 그녀의 팬티가 하이레그형이라는 걸 알 수 있게끔 거의 바지가 벗겨진 상태라고나 할까.


나는 평소 의식 있는 시민인 척하느라고 대놓고 사람을 쳐다보지 않는데 절로 그녀의 팬티에 시선이 꽂히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같이 걷던 남편에게 진지하게 소곤거렸다.


‘혹시 화장실 갔다가 지퍼 올리는 거 깜박한 거 아닐까?’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다고 제정신이냐고 호통치던 나의 엄마가 보면 대놓고 매찬 년(*우리 집안에서만 쓰는 욕설인데 미친년이라기보다는 미치진 않았지만 그 지경까지 가려는 되바라지고 앙큼한 년이라는 뉘앙스의 욕)이라 할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의식 있는 시민을 지향하려는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이미 이 세상은 내가 쫓아갈 수 없을 만큼 변화하고 있었다. 남들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용기 있는, 아니 어쩌면 용기가 필요치 않은 사람들이 별종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 다리 굵다고 짧은 원피스도 못 입는 나 같은 사람이 오히려 별종 일지 모른다.


나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별나지 않은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등이 1/2만 파인 원피스를 입기로 결심했다.(나는 왜 결심까지 해야 할까) 가슴골까지 깊게 파인 네크라인을 잘 여닫아 바늘로 동동 꿰매고 안에 청바지를 입고 나서야 마침내 안심하고 나갈 수 있었지만.


알고 있다. 파격적인 옷을 입는다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지 않는 것을. 하지만 염미정 말처럼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걸 하고 나면 달라져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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