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을 기르듯

견딜 만한 걸 견딜 것이다.

by 윤비

머리카락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묘하게 남성미 돋아나는 재질인데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다. 오랫동안 숏컷 스타일을 유지했는데 두 달에 한 번씩 미용실 가는 일이 진저리가 나서 내게 찰떡인 숏컷을 포기했다. 현재 내 머리카락은 가슴팍 언저리까지 도달했다.


문제는 머리카락이 길수록 바닥에 떨어지는 머리카락의 양이 어마어마해 보인다는 것. 이걸 한데 모아서 새둥지 만드는 데 쓰라고 짹짹이들한테 넘겨주고 싶을 지경이다. 온종일 머리 한올 남기지 않고 틀어 올리고 있는데도 이것들은 어느새 삼삼오오 모여 바닥을 나뒹굴고 있다. 머리카락에 비교적 관대한 나조차도 이젠 못 본 척할 수 없어서 이삭 줍듯이 머리카락을 수거하고 있다.


요즘같이 더울 때 머리카락 말리는 것은 또 얼마나 고역인지. 미용실 가기 싫어서 한 선택으로 나는 몹시 잦은 불편을 겪고 있는 셈이다. 살면서 이런 선택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 눈 딱 감고 한번 실행에 옮기면 만사가 편할 것을 그 단 한번의 실행이 싫어서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는 것 말이다.


겨드랑이 제모도 레이저 10번이면 사라질 것을 나는 매년 여름, 족집게로 털을 뽑고 앉아있다. 이유는 미용실과 비슷하다. 겨드랑이를 보여주기 싫다. 나는 겨드랑이 땀도 엄청나게 많이 나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 아찔한 상황을 겪을 바엔 수십 번의 따끔거림을 일주일마다, 여름이 끝날 때까지 견디는 게 더 낫다.


가끔 내가 고역스러워하는 일이 보통 남들에게는 식은 죽 먹기와 같은 것이라는 사실에 현타가 오지만 내 맘이 더 편안하다면 되었다.


물론 뜨거운 죽을 식은 죽 먹듯이 참고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그들에게는 박수를 보낸다. 나도 그런 부류였다. 하기 싫어도 꾹 참고 결국은 해내는 그런 사람. 이젠 내가 그랬다는 기억조차 흐릿하지만. 그렇게 견디면 결국 남는 것은 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무언가가 남는 대신 무언가는 사라진다. 나는 사라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다 놓아버렸다.


더 이상 지난날의 나를 연민하지 않는다. 당시에 나는 살고 싶은지 살기 싫은지도 모르겠는 시간을 보냈다. 괴로웠다. 1년이 지났고 그 괴로움은 옅어졌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나는 괴로운 것이 아니었겠다는 생각도 한다. 괴로움마저 남들과 비교해서 깎아내리려 하는 나는 참 여전하다. 다시 그 괴로움을 들여다본다. 그래 차라리 옅어지는 게 나은 것 같다. 나는 여전하지만 어리석은 건 아닐지도.


너무나 싫어해서 맘 속으로 수십 번 수백 번 죽였던 인간들의 꿈도 이젠 꾸지 않는다. 가끔씩 내가 그들에게서 벗어났다는 것이, 두 번 다시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보지 않고 듣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좋아한다. 나는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해야겠다. 그리고 견딜 만한 걸 견딜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멍청한 짓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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