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인.
현재의 집은 인생의 4번째 아파트로 건축된 지 23년이 지난 아파트다. 거쳐 간 집 모두 20년이 지난 오래된 아파트였다. 원하는 동네의 신축 아파트는 터무니없이 비쌌기 때문에 차선의 선택을 한 것이지만 살아보니 나쁘지 않았다.
가끔 신축 아파트를 방문할 때면 신문물을 발견한 것처럼 휘둥그레 정신이 없다. 가장 당혹스러운 건 주차장이다. 오래된 아파트의 주차장은 네모반듯한 구조가 많은데 요즘의 아파트들은 복잡하다.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의 주차장이 광활해서 당황스럽다면 이곳은 광활한 미로 같다.
몇 년 전에 귀신에 홀린 것처럼 같은 자리를 수십 번씩 돌다가 눈물까지 찔끔거렸던 경험이 있어서 주차장에 갈 것을 생각만 해도 혼절할 것 같다. 내가 좀 심각한 길치다.
나는 일상을 이루는 것들이 단순하고 명료하고 깔끔한 게 좋다. 사람이나 책의 문장, 대화의 방향 등 거의 모든 것에 해당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오래된 아파트는 군더더기가 없어서 좋다. 직육면체 외관의 건물에 직사각형 창문들. 미학적 가치를 논할 수 없는 모양새(내 입장에서는 충분히 미학적이지만)지만 그 단순한 구조와 목적성이 단박에 드러나는 명료함이 꽤나 맘에 든다. 직육면체 아파트들이 쪼르륵 서 있는 걸 보면 안정감이 느껴진다.
오래된 아파트에 미학을 부여하는 것은 아파트와 함께 세월을 먹은 나무들이다. 오랜 시간을 견딘 나무의 존재감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그들의 가지가 자연 터널을 만든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오래된 단지 내의 조경은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지만 대신 뜬금없는 장소에 멋진 나무들이 보석처럼 숨어있다.
오래된 아파트는 리모델링이 필수인데 나는 그 점도 좋았다. 새 아파트는 모든 것이 새것이라 깨끗했지만 바닥, 벽지, 싱크대, 욕실 등등 뭐 하나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새것을 마구 뜯어낼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오래된 아파트는 죄책감 없이 모든 걸 내 취향대로 고칠 수가 있었다. 리모델링에는 수많은 결정이 뒤따르는데 대부분은 그걸 힘들어한다. 나는 현관문 도어 스토퍼까지 내 취향으로 골라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 그 과정이 괴로우면서도 즐거웠다.
처음 리모델링을 했을 때는 모조리 다 바꿨었다. 그 경험으로 무조건 새것이 멋진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지금의 집은 일부러 오래된 흔적을 다 없애지 않고 새것과 어울리는 건 그대로 남겨두었다. 번쩍번쩍하지 않지만 내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공간은 상당한 만족감을 주었다. 그야말로 삶의 질이 수직 상승했다.
좋아하는 아파트의 재개발 소식을 들었다. 몇십 년 동안 자리를 지켰던 그 멋진 벚나무들도 결국 잘려나가겠지. 모든 걸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겠지만 제삼자의 입장이라 어쩔 수 없이 서운하다. 새롭게 탄생될 아파트 단지 조감도를 보며 모든 것이 새것으로 대체되는 세상이 좀 무섭단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도 그곳에 벚나무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지도.
반질반질 윤이 나는 오래된 아파트를 멋스럽다 여기고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누군가가 살았던 그곳이 그들이 세상에 없을 때도 또다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곳이 되길 바란다. 그렇게 차곡차곡 역사가 쌓이는 아파트들이 존재했으면 좋겠다.
그저 아주 주관적인 아파트 취향을 가진 사람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