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어떤 소속감이 그리운 모양이다.
#1 13층에 사는 청년
주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13층 청년은 보기 드물게 인사성이 밝았다. 고개만 까딱하는 인사도 힘들어하는 나는 마주칠 때마다 두 눈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청년을 보면서 ‘어느별에서 왔을까’ 했었다. 아마도 그 별은 다정한 외계인들이 사는 별이겠다 싶었는데, 청년의 아버지를 본 순간 알았다. 아, 아버지도 같은 별에서 왔구나.
요즘 나는 아침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되뇌며 절에 오르고 있는데 종종 13층 청년을 거리에서 보았다. 아침 9시가 지난 시간에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라 그 속에서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란 존재는 물 위에 뜬 기름 같았다. 그런데 13층 청년도 나와 같이 동동 떠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청년이 구직자이며 아침마다 나처럼 갑갑함을 이기지 못하고 뛰쳐나와 산책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대학생이거나 재택근무자일 수도 있지만 나는 13층 청년을 나와 한데 묶어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으로 분류하고 싶었다.
거리에서 마주친 청년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쳤을 때처럼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지 않았지만 나는 거리에서 만난 청년에게 더 친밀감을 느꼈다. 그리고 속으로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 ‘너도 힘들지? 아줌마도 힘들어.’
#2 로또 파는 할아버지와 그의 고양이
주 1회, 천 원 치의 로또만 사는 것을 1년째 시행하고 있었던 나는 최근 조바심을 느끼며 무려 이 천 원 치의 로또를 구매하고 있다. 그것도 온라인 동행 복권이 아니라 오프라인 로또 판매점에서 말이다.
아파트 상가의 구석에 위치한 그곳은 작은 서점으로 증명사진도 찍어주고 로또도 판매한다. 그리고 뚱뚱한 러시안 블루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다. 고양이는 주로 할아버지가 마련해준 박스 안에 있거나 책 진열대 위에서 잠을 자고 있지만 외출도 서슴지 않는다.
그는 주로 상가 주차장을 산책하거나 주차된 자동차 아래에 누워있다. 관찰 결과 근처 길고양이들 급식소도 수시로 방문하는 모양이다. 한밤 중에 동네 고양이들을 이끌고 아파트 안을 누비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길고양이라고 할지라도 사람 손을 탄 아이들은 아는 체를 하면 애교를 피우는데 이 러시안 블루는 아무리 불러도 본체 만 체다. 친해지고 싶지만 더 이상 아는 체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항상 ‘안녕’ 인사만 하고 지나간다.
암튼 이 시크한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서점 할아버지 또한 엄청 시크하다. 그는 항상 세상만사 진저리 난다는 표정을 하고 카운터에 앉아있다. 나는 그 할아버지에게도 속으로 말을 건다. ‘알죠. 알죠. 그 진저리 나는 감정.’
몇 주 전, 그러니까 오프라인으로 이 천 원 치의 로또를 사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나는 그에게 동전으로 로또를 구매한다. 맘 같아서야 지폐로 구매하고 싶지만 동전 주머니에 가득 찬 동전들을 처리해야 했다. 동전은 100원짜리 10개와 500원짜리 2개일 때도 있고 100원짜리 동전만 20개일 때도 있지만 나는 그가 좀 더 빨리 동전의 개수를 파악할 수 있도록 양손에 각각 천 원만큼의 동전을 쥐고 그에게 천 원씩 동전을 건넨다. 그리고 약간 쭈뼛쭈뼛 말한다. ‘자동 2천 원이요’
이런 일상이 반복되자 할아버지는 어느새 나에게 존대도 아니고 반말도 아닌 말투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자동? 이 천 원?’ 평소의 나라면 이런 말투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이번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시크한 고양이와는 끝내 친해지지 못했지만 시크한 할아버지와는 조금 가까워진 느낌. 게다가 이 할아버지는 나를 어리게 보고 있는 게 틀림없다. 기분 좋은 일이다.
아무래도 나는 어떤 소속감이 그리운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