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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Nov 03. 2022

감사일기를 쓰기로 했다.

두 달이 지났다.

언덕을 오르고 있는데 앞서 걷던 아주머니가 나를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이 시간에 일은 안 하고 산에 가는 내가 역시 이상한 모양이다라고 생각했다. 그 시선이 점차 노골적으로 변해서 아주머니를 쏘아봤는데 그녀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아이고 아는 아가씨랑 너무 닮아서 미안해요~’

‘아아.. 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아가씨’라는 단어. 감사합니다. 아가씨라니요. 지금 무엇보다 제 소원이 아가씨인걸 어떻게 아셨는지요. 쏘아봐서 죄송합니다. 그 아가씨가 누구인진 모르지만 제가 그 아가씨가 되고 싶습니다.    

  

두 달 사이에 많이 늙었다. 머리카락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져서 머릿속에 손가락을 넣어보면 매끈한 두피가 쉽게 만져진다. 피부는 푸석하고 미간 주름이 깊어졌다. 무엇보다 눈동자에 생기가 사라졌다. 내가 봐도 흠칫할 만큼. 하지만 아가씨라는 단어를 듣고 속으로 히죽거릴 생기 정도는 남아있는 모양이다. 사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는 하는 요즘이다.    

 

살아있다는 것. 걸어 다닐 수 있는 두 다리가 있어 매일 아침 절에 오를 수 있다. 볼 수 있는 두 눈이 있어 이 계절의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두 귀가 있어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고 따뜻한 엄마 밥을 먹을 수 있다.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가장 감사한 것들이었다.     

 

나는 항상 미래를 사는 사람이었다. 현재는 그저 불안하지 않을 미래를 위해 버티는 시간이었을 뿐이었다. 버티는 걸 가장 잘한다고 자부했지만 버틴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힘들어지게 되어있다. 온종일 플랭크를 한다고 생각해 보라. 나는 온종일 플랭크를 하는 마음으로 현재를 살았던 것 같다.     

 


지금도 계속 미래로 달아난다. 그러면 나는 재빨리 그 새끼를 끌고 와서 현재 이 시간 내가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게 한다. 제대로 되지 않으면 밖으로 뛰쳐나가서 새로운 풍경을 눈 안에 담는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나갈까 말까 했던 내가 자주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어떨 때는 시끄러운 카페 안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감사일기’를 써보려고 한다. 예전의 나라면 코웃음 칠 일지지만, 지금도 ‘감사일기’라는 것이 주는 멋쩍은 느낌을 떨쳐내진 못했지만 무엇이든 해 보려고 한다.      


오늘의 감사일기

1. 힘내자는 엄마의 문자

2. 맛있었던 청국장

3. 꾸준히 새잎을 올리는 식물들

4. 꿀맛 같았던 낮잠

5. 오늘도 무너지지 않으려 애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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