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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지런한백수 Jun 18. 2021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20대 때 제일 큰 고민은 꿈과 내 삶의 방향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주변의 친구 문제일 수도 있으며 곁에 있는 연인과의 관계일 수도 있다. 삶의 길을 찾아가는 시기라고 하니 어떤 고민이든 무엇 하나 이상한 게 없다. 그러나 만나는 무리에 따라 개인의 고민이 값어치 있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고 터무니없는 꿈 혹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일이라 치부될 수 있기도 했다. 아빠가 내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생각이 많다. 이 말을 살면서 한 번도 부정할 수 없었는데 10대 후반 때부터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과 지금 하고 있는 사고의 원천이 어디인지 찾아가는 작업을 수시로 하였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왜 이렇게 행동하고 이렇게 생각하는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끊임없이 생각하며 나의 삶의 이유를 찾으려 하고 내가 생각하는 삶의 기준을 살아가고 싶어 기준을 세우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도 했다. 간혹 나의 이상과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흔들리며 스스로를 타박한 적도 있으나 그는 극히 일부였다. 꿈꾸기 좋은 나이니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의 고민은 별 게 아니었다.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많은데!




 사회에서 부여하는 나이도 내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20대 초반에 원하는 걸 하겠다고 3수를 선택하다 대학을 2년 늦게 들어갔을 때, 막 대학에 들어온 동기들과 나를 한 번 비교하며 내가 늦은 것은 아닐까 남들보다 빠른 선택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하는 조바심은 있었다. 이는 대학을 1년 다니며 말끔히 사라졌다. 나이는 지극히 사회 혹은 주변, 자신이 스스로를 묶는 사슬이었다. 아기 코끼리 발에 걸린 족쇄와 같은 것이다. 이에 한 번 묶이면 성장하면서 절대 나이의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고민은 동갑인 동기에게도 유효했으니 대학이란 존재가 새 삶을 안겨주는 동시에 나이의 한계를 일시적으로 지었던 건 틀림없었던 것 같다. 왜일까 생각해봤다. 청소년기를 마치고 성인의 첫 발자국을 당당하게 증명하는 것 같은 대학이 왜 다시 나이와 시기로 우릴 더 조급하게 옥죄는 것일까.


 그는 간단했다. 앞만 보고 달려가도 무엇을 쟁취하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본인에서부터 시선만 돌리면 돌아볼 수 있는 주변까지, 보지 못하고 오로지 여럿의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사회가 현재라면 또 그에 맞게 살아야 하는 것도 생존과 미래를 위한 자연스러운 한 세대의 흐름이었다. 세상과 삶에 정답이 없듯 누군가의 성공은 그의 삶의 태도에서 나타난 결과이고 정반대의 성공역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이의 과정이자 결과 그 자체였다. 극과 극에 서있는 A와 B의 성공 중에 현재의 사회를 비추어 봤을 때 정답인 것은 무엇도 없다. 우리 모두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어른들에게 들어봤을 것이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조금씩 커가면서 듣는 얘기엔 이제 문장이 덧붙여지곤 한다. 대게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하는 문장들이다. 이 여덟 글자만 붙으면 갑자기 화제와 분위기의 방향이 극적으로 바뀌며 원하는 것을 하며 살라, 카르페디엠! 같은 주옥같은 문장들에 감명을 받던 나의 태도도 바뀌었다. 긴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살짝 긴장이 풀리며 귀가 닫힌다고 할까. 어른의 입장에선 아주 불손한 태도이지만 나의 입장에선 결국 뻔한 얘기였다.


 대학1년을 다니며 말끔히 내 고민 카테고리에서 지웠던 나이에 대한 조바심이 강할 때는 2학년 23살 초였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다시 생각해봤을 때 그 조바심은 고등학교 친구들이 4학년이고 취업을 준비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기에 느껴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대학에 늦게 들어간 만큼 방향을 빨리 정해서 얼른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려면 얼른 선택을 해야 할 텐데 나는 무엇을 하고 싶지? 대학을 졸업하면 26살인데, 하는 뻔한 생각에 대학원도 알아보고 유학도 알아봤다. 이 선택지에 취업이 없었다는 게 27살인 지금에서도 웃긴 상황이다. 지금도 똑같이 취업을 고려하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이런 똑같은 모습에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고 해야 할 지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해야 할지 나는 아직 그 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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