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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지런한백수 Jun 18. 2021

17세 12월, 27세 5월.



 27살 5월의 나는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깎는 스타일은 아니나 유일하게 비교하는 대상이 하나 있다. 17살 겨울의 나. 고등학교 1학년 때 미래에 대한 고민과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탐구와 내가 그동안 꿈꿨던 장래희망들을 되새겨 보며 프리랜서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그림도 그리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달래고 나아갈 수 있는 일이 나에게 맞는 것 같다고 부모님께 당당히 말하며 문창과나 극작과를 준비할 수 있는 학원을 알아보고 소개했다. 


 10살이나 더 먹은 지금 어린 나를 돌아본다면 아주 기특하기 그지없다가도 너무 이르게 스스로에 대해 알아버린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때때로 몰라서 도전하는 게 있는가 하면 알아서 도전하지 않는 것도 많기 때문에.


 그러나 열일곱은 두려울 거 없이 당당했다. 결정하면 아무 고민 없이 정한 길로 나아가기만 하면 됐다. 걱정이라면 실기 학원비 정도? 미술 하는 친구 학원비는 한 달에 이런저런 이유로 많이 나가던데 나도 그런다면? 마지막으로 아빠와 역삼동에 있는 학원에서 함께 상담하며 18살 3월 첫 번째 진로를 시작했다.



 27살 5월에 다다르기 전까지 한 길로 쭉 갔으면 좋았겠지만 끊임없이 방향을 바꾸며 헤매야 지금 쓰고 있는 글들과 고통이 말이 된다. 그 시간들 사이엔 공부를 더 하고 경험을 쌓으면 글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숲을 보는 생각과 나이대에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기 위함이 있었다. 불확실한 것보다 좀 더 확실한 것들을 하나씩 채워가며 내 글감을 만들어야지.

 그렇게 삼수를 하면서 영화과가 있는 대학에 불문과로 입학해 복수전공을 꿈꿨다. 그러나 현실적인 상황이 그를 뒷받침해주지 않았고 무엇보다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은 시나리오였지 촬영의 영역이 아니었기에 전공에 충실했다. 이따금씩 열일곱으로 돌아가는 것만 빼면.



 그 때의 태도, 늘 나는 무엇이 두려워 그때와 다를까 하는 수많은 생각들을 한다. 유학 준비를 하던 길을 멈추고 과거의 노력과 시간에 대한 미안함과 앞으로 나아갈 미래에 대한 버거움에 휩싸여 숨을 내뱉는 것도 힘들고 말만 하면 눈물이 흐르는 5월에도 그러하였다.


 얘야, 너는 무엇하여 계속 너와 너를 비교하니.


 그것은 어쩌면 내가 되고 싶었던 ‘나’가 그때의 모습이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과거를 돌아가고자 과거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롤모델은 결국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 나에 대해 탐구하고 방향을 정하고 오로지 자신만 믿고 나아간 ‘나’였다. 

 자기계발서도 작가와 가정환경부터 다르며 처해진 상황도 다른데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싶어 읽지 않았던 나날들에서 내가 찾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열일곱이었다.



 그때와 현재는 많이 다르다. 환경과 나이, 노력의 시간을 제외하고 성격 자체가 아예 다르다. 지금은 좀 둥글고 유하다면 그땐 꽤 모났다. 늦게 온 사춘기와 학교라는 사회에 갇혀 순리에 따라야 하는 시스템에 대한 반항감 때문이었다. 인사를 기분 좋게 잘 하고 다녀 학년 선생님들에게 칭찬을 받고 관련된 상도 받을 정도의 좋은 이미지는 여름방학 때 다 무너졌다.


 정규 수업 때 원어민과 하는 영어 수업이 있었는데 원어민과 비교적 말을 많이 해서 안면이 두터운 나와 학급생 2-3명이에게 방학 때 하는 프로그램 참석을 요구했다. 지금은 없다지만 무려 10년 전엔 야자와 방학 자습이 의무적이었던 때라 그 참석은 아주 사소한 일탈과도 같았다. 우리는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수업을 들었지만 곧 3명의 빈자리를 아신 담임 선생님과 학년 부장선생님이 바로 호출해 교무실에서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있어야 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가고 귀엽게라도 봐줄 것을 그땐 학년 부장선생님의 말이 권위적이었고 원어민 프로그램을 방학 때 진행하면서 아이들 참석은 못하게 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참석이 필요한 프로그램에 가지 말라고 하면 그건 왜 만든 거냐하는 당당한 말을 내뱉으니 교무실에 있던 선생님들이 모두 눈을 동그랗게 한 채로 내게 시선을 모았다. 안다. 내게 우호적이던 선생님들의 눈빛이 실망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열일곱 역시 그때 선생님들에게 실망했다. 선생님들의 시선은 어떠한 이유와 상관없이 의무와 시스템 속에 따라야 하는 것이 옳다는 반증이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그때부터 좋게 보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열일곱은 치기 어리기도 했지만 용감했고 자신의 생각을 떳떳하게 말 할 수 있는 이였다. 스물일곱은 무엇이 두려운지 아빠에게 내 생각과 진로를 말하는 것조차 쭈뼛거리며 혼자 수차례의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글을 써서 정리를 했다가 아빠에 의해 대화가 시작되면 일단 생각해보겠다며 순간을 넘긴다.


 아빠와 선생님이라는 상대 자체가 달라서 아니었을까 싶을수도 있지만 스스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 머물러 있다.


 당당함과 패기를 잃은 스물일곱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생각들이 그저 상념에 그치는 것과 같고 스스로의 방향을 잡지 못해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나약함이 더 혼란스러운 5월이다. 그리고 상실은 2년에 가깝게 준비하던 유학 준비를 그만두면서 더 극대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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