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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지런한백수 Jan 30. 2022

퇴사했습니다.

계약 6개월


 하루가 일주일같고, 일주일이 한달같던 6개월의 계약기간을 끝마쳤다.



 스타트업이고 수평적 구조에 나이 또래가 비슷한 동료들과 대표님들 곁에서 비교적 외적인 스트레스는 받지 않은 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적어 재계약 제안이 들어왔을 때 애초에도 없던 '재계약' 에 대한 생각이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선택한 것은 '아니오' 였다.



 선배의 소개로 진로를 다 뒤엎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던 때, 하루하루 숨을 쉬기도 힘들었던 때 잠깐만 아르바이트처럼 해볼래? 란 말에 시작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편도 2시간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회사지역에 친구들도 있으니 몇시간 일하고 친구들하고 놀다나 오면 되겠다.


 그러나 일복이 있는 것인지 주3일 출근하기로 한 첫주 2번째 날이었던 수요일에 당장 다음주에 있을 협업 프로젝트로 인해 "내일부터 2주간 10-6 매일 출근해줄 수 있겠어?" 란 말을 들었다.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래, 2주동안 직접적으로 일해보면서 일을 더 해볼건지 생각해보자. 늘 하던 생각의 연속과 같아졌지만 적어도 '나'의 내부에서만 맴돌던 사고가 외부로 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그렇게 가볍게 6개월 계약을 했고, D-100을 세고 D-30을 세더니 D-day에 다달았다.


-


 회사도 좋고 동료들도 좋고 대표님들도 너무 좋았지만 깔끔하게 퇴사를 결정한 이유는 결국 또 '나'였다.


 일을 해서야 비로소 내가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한다는 것도, 매일같이 해서 몰랐던 학문에 대한 애정도.


 하루하루 출퇴근을 반복하며 평소와 같이 스스로를 의심했다. 6개월 동안.


내가 피곤하고 아무 것도 못하는 것은 왕복 4시간 때문일까.


내 정신이 나약해서일까. 


아, 매일 문제라 생각했던 체력과 에너지 때문인가? 


혹시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해 출퇴근 시간을 줄이면 나는 뭔가를 할 수 있을까?


-


 일하고 3개월간은 주말에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한 달에 1-2번 평일에 한 번씩, 회사가 있는 지역의 친구들과 만난 정도였다. 그러니 3개월차를 지날 때 즈음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친구를 만나지 못해서가 아니라 피곤함에 주말내내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있다보니 또 월요일이 되고, 나를 위한 시간을 전혀 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를 위로할 시간이 없으니 외로워져갔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아니라 내가 나와 보낼 시간이 적어 느끼는 외로움이었다. 스스로도 지독하다 싶었다.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면 누워있지 말고 나가!



 속에선 또 몇 개의 자아들이 자기들끼리 싸워댔다. 그럴수록 집에 돌아가는 길에 창밖을 멀리보곤 했다. 그때부터였다. 퇴근 후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고 애써 친구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매주, 일부러라도 나갔다. 몸이 피곤해도 아침엔 어떻게든 일어나니 내가 움직이면 되겠네! 별 수 있어? 끝은 공허했으나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주에 약속 1번 있어도 충분한데 평일내내 출퇴근을 하고 주말에 또 누군가를 만나다니. 과거의 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걸 I성향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하면서 시간에 미친 나는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나갔다. 그럼 남은 주말엔 미친듯이 잠만 잤다. 오전내내 잠을 자고도 오후에 몸이 노곤해 또 잠을 자고, 밤에 다음날 월요일을 위해 또 잤다. 


 회사를 다니기 전 가장 염려하던 것은 사회생활과 회사 시스템이었는데 다행히 계약이나마 첫 직장으로 자율적인 곳에 다니니 일하는 내내 염려할 것은 없었다. 그저 하나를 깨달았을 뿐이었다.


 나는,

 내가 성장하고 나를 발전시켜야 하는 사람이다.


 내가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은 내가 나와 보내지 못한 시간의 감정이었고, 내가 채우지 못한 나에 대한 부족함이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하면서 새 진로를 잡았다.


 결코 놓지 못하는 것과 나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의 결합을 이룰 수 있게끔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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