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풀빛푸를은 Jun 29. 2023

기억이 흐릿해 진다는 것,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

그곳에 처음 갔을때 낯설음과 두려움에 잔뜩 긴장했다. 그 세계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 그렇다고 가고 싶지도 않은, 꼭 상상하기 싫은 그런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두 팔 벌려 환영의 인사를 하고 있는 안개 가득낀 어느 굴다리의 입구 같은. 

밖과 다르게 아주 시간이 더디게 가는 곳. 

그들에겐 이름이 있었지만 이름 보다는 높임 호칭으로 더 많이 불리우고 있었다.

H님은 1924년 생이었다. 올해로 태어난지 99년이 되었다. 

그 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듣기에도 아주 벅찬 세월이었다. 

H님은 그곳에서 제일 정정하고, 건강해 보였다. ‘왜 이곳에 계시지?‘ 할 정도로.

사람들은 단 며칠만을 보고 섣불리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이 곳에서의 가장 큰 실수라고 했다.

스쳐지나가는 말로, 며느리에게 잘못했다거나, 고집이 세다거나, 돌봐줄 사람이 없다거나….많은 추측들이 오갔지만 무엇하나 맞는 말은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H님과 J님은 매일 민화투를 쳤다. H님은 성격이 좀 급한 반면, J님은 느긋했다. 민화투를 칠때 J님이 신중하게 패를 고르고 있으면 H님은 기다리는게 지루했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화투판을 엎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J님은 별다르게 할일이 없었다. 거동이 불편한 J님은 누군가 와주지 않으면 혼자서 자리에서 일어나 앉기도 힘들었다. 젊었을때 상군 해녀였다고 하는 J님은 책을 좋아했고, 사람들에게 관심도 많았다. 그리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는데,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꼭 이노래를 불렀다. 


"이팔 청춘 소년들아 백발 부모 괄시 마오 너도 늙으면 백발 온다" 


다른 노래를 부르다가도, 꼭 끝에는 이 노래로 마무리 하곤 했다. 

그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마음 한켠에 생각이 많아졌다. 집에 가서도 내내 맴도는 노래였다. 

그곳에 계신 분들의 나이, 몸짓 만큼이나 시간이 아주 더디게 가는 그 곳은 사람들의 감정을 마구 뒤흔들었다. 

사람들은 그 여리고도 질긴 감정을 받아들일 수도, 외면할 수도 없어 시시 때때로 괴로워했다. 

힘들때면 괄시 하다가도, 문득 문득 멀지 않은 미래의 자신의 모습인 것 같아, 성심을 다 했다.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일이다. 

가끔 가족이 면회를 오면 어린아이처럼 기대감에 가득차고 눈을 반짝이며 면회실로 갔다. 

면회를 하는 동안 그리운 가족을 만나고, 눈물을 흘리고, 기억의 끈을 어렵게 어렵게 당겨 보지만 

다시 돌와와서 '누구를 만나고 왔냐'라는 질문에는 대답을 못한다. 

"몰라"

가슴에 안고 있는 커미픽스 한박스만을 소중하게 잡고, 

내 사랑하는 이들의 소중한 마음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려고 애쓴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머리 한번, 얼굴한번 쓰다듬으며 눈물을 훔친다. 

그렇다고 항상 모든 것을 잃어버린채로 있는것은 아니었다. 가끔씩 기억이 돌아오고, 내가 누군지, 집은 어디인지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도 하는데 그럴때면 그곳에 있기 싫으면서도, 어쩔 수 없음을. 나가도 딱히 갈곳이 없음을 알고 체념하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