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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건의 서재 Jun 02. 2021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게 된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딱 3주 전이었다. 사무실 전화기 화면에 모르는 휴대전화 번호가 뜨면서 벨이 울렸다. 요즘 내가 받는 전화 중 이렇게 010으로 시작하는 것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다. 비대면 진료를 원하는 자가격리자이거나 백신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상담을 원하는 이들이다. 어느 것 하나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일들이다. 나는 이번에도 그럴 것으로 짐작하고 길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상이 빗나갔다. 전화를 건 이는 자신을 방송 작가라고 소개했다. 정중하면서도 차분한 말투로 혹시 방송 출연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왔다. 나는 무슨 방송인지 되물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면 담당 작가가 연락해서 알려준다고 했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해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몇 분 후, 이번에는 휴대전화로 역시 모르는 전화가 걸려왔다. 방금 통화한 것이 있었기에 바로 받았다. 수화기 반대편에서 전화를 건 이는 자신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작가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내게 혹시 출연해 볼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 줄여서 ‘유퀴즈’. 집에 TV는 없지만, 인터넷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유퀴즈’ 세글자의 위상을 모르지 않았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넘쳐나는 세태 속에서 따뜻한 인간미를 지켜가기 위해 노력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알고 있었다. 나는 출연 기회가 주어지면 진심을 담아 해보겠다고 답했다.


사실, 작가와 통화하던 그 순간 나는 코로나19 호흡기 클리닉의 호출을 받고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전화 통화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고 충분히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로 전화를 끊어야 했다. 못내 아쉬웠지만, 하루 뒤 제작진 회의에서 출연 확정 여부가 결정된다고 하여 차분하게 그 결과를 기다렸다.


하루가 지났다. 작가로부터 출연을 결정하였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난생처음 TV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이 확정되었다. 그 이후 과정은 정말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출연 확정 이틀 후 전화로 사전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다음 주엔 서울 모처의 스튜디오에서 유재석 님, 조세호 님과 함께 본촬영을 했다.


유재석 님의 인품은 이제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이라 새로울 것도 없지만, 실제로 곁에서 대화를 나누어보니 어떤 존경심마저 느껴졌다. 내가 TV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한 경험이 없는 것을 알고 부담감을 덜 수 있도록 촬영 내내 세심하게 챙겨 주었다. 유명인이라면 으레 있을 법한 새로운 사람에 대한 경계심조차 전혀 없었다.


여담으로, 촬영 일주일 전 유재석 님이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했던 터라 나는 가장 먼저 수상 축하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직접 만난 뒤에는 곧바로 촬영이 시작되고 스튜디오 분위기에 적응하기도 벅차서 그런 여유를 부리지 못했다. 그 점이 조금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음에 만나면 정식으로 축하 인사를 건네고 싶다.


한편, 조세호 님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웃음의 소재로 삼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천생 개그맨이었다. 그러면서도 상대가 말할 때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집중하며 귀를 기울였다. 심지어 그 모습이 귀엽기까지 했다. 머잖은 미래에 유재석 님의 뒤를 잇는 우리나라 대표 개그맨으로 성장할 조세호 님의 모습이 기대되었다.


이번 방송 촬영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다. 본촬영이 진행된 스튜디오에는 휴일 아침부터 어림잡아 서른 명은 되어 보이는 제작진들이 일사불란하게 자기 역할을 다하며 움직였다. 그날 이후에도 작가들은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었고, 추가로 산행 촬영이 결정되자 촬영팀은 일요일 아침부터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햇볕이 내리쬐는 산 정상에 오르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세상의 가치 있는 것 가운데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없겠지만, 그들이 방송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흡사 구슬땀을 흘려가며 도자기를 빚어내는 장인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그들만큼 나의 일에 열정을 다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또한 이번 방송은 1년 넘게 코로나19의 최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해운대구 보건소 직원들, 그리고 우리 소중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애쓰고 있는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가족들과 함께하여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다. 특히 귀한 시간을 내어주신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윤용수 교수님,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김웅한 교수님,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기범 교수님, 조봉수 해운대구 보건소장님, 안상호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대표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부디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이번 방송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이번 방송을 준비하면서 나는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다시금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이날 이때까지 살아온 모든 과정은 실로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많은 것을 빚졌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방송 제목: <유 퀴즈 온 더 블럭> 제109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방송 일시: 2021년 6월 2일 수요일 오후 8시 40분

방송 채널: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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