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어느 날, 도시 곳곳에 병든 쥐들이 나타나고, 이어서 사람들은 이상한 병에 걸리기 시작한다. 이 병은 페스트로 밝혀지고, 오랑시는 봉쇄된다. 사람들은 외부와 차단된 도시에서 고통과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러한 혼란 속에서도 의사 리외와 그의 동료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묵묵히 해나간다. 마침내, 페스트가 물러가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페스트』는 카뮈의 이전 작품인 『이방인』과 함께 부조리 철학의 연장선에 있는 소설이다. 부조리란 현실 세계가 인간의 합리적인 생각과 무관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의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과 관련 인물들이 부조리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쓰였다면, 『페스트』에서는 갑작스럽게 창궐한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도시가 격리되어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 합리적인 이해와는 어긋나는 부조리를 나타낸다.
『이방인』은 주인공 뫼르소의 개인적 시각에서 부조리를 다루었던 것에 비해, 『페스트』는 공동체가 부조리에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 그려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페스트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쉴 틈도 없이 일하는 의사 베르나르 리외, 그를 도울 시민 보건대를 조직하여 이끈 장 타루, 시청의 말단 공무원이지만 시민 보건대에 자원하여 나름의 역할을 한 조제프 그랑, 오랑 밖으로 탈출하려 했으나 마지막에 계획을 접고 이들과 합류하기로 결심한 외신 기자 레몽 랑베르, 종교인으로서의 고집을 내려놓고 사람들을 살리는 데 힘을 보탠 신부 파늘루, 심지어 페스트를 기회 삼아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려고 애쓴 코타르까지도. 카뮈는 공동체야말로 부조리에 저항할 희망이라는 걸 보여준다.
작가는 그러면서도 부조리가 인간의 저항조차도 압도할 수 있다는, 즉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물론이거니와, 실제로 용기 있게 행동하더라도 현실의 결과는 그와 무관할 수 있다는 점도 놓치지 않는다. 리외와 함께 시민 보건대를 이끌며 페스트로부터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헌신했던 타루가 유행 종식을 목전에 두고 바로 그 페스트에 희생되는 대목이 그렇다. 세상은 인간의 이해, 의지, 노력 같은 것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부조리의 가장 극명한 예가 아닐 수 없다.
이 부분은 또한 작가의 부조리 철학의 핵심이 명료하게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의사 리외는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의사이고 의사는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뿐이다. 이러한 모습은 산 정상에 올려진 돌이 굴러떨어지면 다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의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그의 에세이 『시지프 신화』에서 시지프가 다시 바위를 굴려 올릴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를 거라고 말했다. 부조리에 저항하는 그 자체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3년, 코로나19 범유행의 시기를 거치며 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나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었는가 자문해본다. 설령,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좌절할 일은 아니다. 거대한 위기에 대항하여 함께 힘을 모아 싸워본 그 경험이야말로 이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값어치 있는 유산일테니까.
원문: https://shinseungkeon.com/%ed%8e%98%ec%8a%a4%ed%8a%b8/ | 신승건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