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에 코로나19 방역당국은 위기 경보 수준을 기존의 ‘심각’에서 ‘경계’로 낮추었다. 이에 따라 입원 병실이 있는 병원을 제외한 모든 장소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권고로 바뀌었다. 확진자의 7일 격리 의무는 5일 권고로 줄어들었다. 오랜만에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자유를 되찾은 사람들의 얼굴마다 밝은 표정이 가득했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 방역 당국은 이달 말부터 코로나19의 감염병 등급을 기존 2급에서 4급으로 하향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독감이라고 부르는 인플루엔자와 같은 등급이다. 이번 조치는 우리 사회가 코로나19 범유행을 넘어서 온전한 일상으로 한 걸음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 깊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3년 반이 넘게 이어져 온 코로나19라는 어둡고 긴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잠시 멈추어 그동안 보건소 직원으로 일하며 겪었던 일들을 돌아본다. 2019년 말 전 세계는 중국 우한에서 처음 시작된 신종 코로나에 대한 우려가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새해가 밝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2020년 1월 말 결국 우리나라에도 첫 확진자가 나왔다. 보건소 앞에 처음에는 천막이, 그다음에는 컨테이너들이 들어섰다.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려고 선별진료소를 찾은 사람들의 줄이 보건소 건물을 휘감으며 길게 이어졌다. 이후 이어진 일들은 지난 3년 반 동안 우리가 함께 경험했던 그대로다. 거리에 나서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리기 시작했고, 약국마다 마스크를 사려는 줄이 이어졌다. 식당에는 테이블마다 투명 가림막이 세워졌고, 한 번에 식사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었다. 학생들은 학교를 떠나 집에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입학을 했지만 같은 반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어려움도 코로나19로 생업을 잃은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수많은 이가 삶의 터전을 잃었고, 그 후유증이 회복되려면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보건소는 코로나19 방역의 최전선에 있었다. 그야말로 긴장된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 누구도 코로나19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가장 어려웠던 일 중 한 가지는 시시각각 바뀌는 방역 지침을 시민에게 전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설득하는 일이었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일들을 지금은 왜 안 된다고 하는지, 왜 누구는 지원금을 받는데 누구는 안되는지, 일부 부작용 사례에도 불구하고 백신 접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지, 내 나름대로는 코로나19 방역 지침들을 사람들에게 쉽고 정확하게 전하려고 노력했으나 돌이켜보면 그 진심이 항상 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1990년 스탠퍼드대 대학원의 심리학 박사 과정에 있던 엘리자베스 뉴턴은 흥미로운 실험을 구상했다. 실험 참가자를 둘로 나눈 뒤, 한 그룹에게는 널리 알려진 노래를 마음속으로 부르며 그 리듬에 맞춰서 탁자를 두드리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그룹에게는 그 두드리는 소리만 듣고 노래의 제목을 맞추어 보라고 했다. 그는 실험을 진행하기에 앞서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듣는 사람들의 정답률이 어느 정도 될지 물어보았다. 두드리는 사람들은 50% 정도의 정답률을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 실험을 진행해 본 결과는 크게 달랐다. 듣는 사람들의 실제 정답률은 120곡 중에서 3곡, 겨우 2.5%에 지나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두드리는 사람들은 테이블을 두드릴 때 머릿속으로 노랫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듣는 사람들이 실제로 듣는 것은 “딱딱” 소리였을 뿐이다. 머릿속으로 ‘생일 축하합니다’를 떠올리며 두드리던 사람은 “반짝반짝 작은 별”이 아니냐고 대답하는 듣는 사람의 반응에 당황한다. 이것이 바로 ‘지식의 저주’이다. 사람은 일단 어떤 것을 알게 되면 알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상상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알게 된 지식이 저주를 내린 셈이다. 이 저주 때문에 우리는 듣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어쩌면 나도 보건소를 찾은 사람들에게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설명하는 동안 종종 ‘지식의 저주’에 걸렸던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보건소 직원으로서 알고 있는 정보와 지침이 그걸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는 낯설 수 있다는 점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것은 내가 알고 그들이 모르는 게 아니라 그들이 알 수 없는 이유를 내가 몰랐던 것인데 말이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서 보건소는 현장에서 전염병을 막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리는 역할에 여념이 없었다. 더 잘할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보건소 구성원 모두는 나름의 최선을 다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이제 곧 코로나19는 4급 감염병이 될 것이고, 보건소에도 코로나19 이후를 맞이할 시기가 다가온다. 두드리며 기대했던 소리가 듣는 사람들에게도 온전히 들리고 있는지 더욱 세심하게 살펴야 할 때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