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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건의 서재 May 10. 2024

5월, 감사의 계절

국제신문 5월 10일 기고글

그는 말기 암 환자이다. 의료급여로 치료를 받는다. 의료급여는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이들을 국가가 돕는 제도이다. 이를 위해서는 병원에서 받은 진료가 해당 질병에 대한 것임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보건소 직원이 그가 처방받은 약에 대해서 병원에 문의했는데, 병원 직원은 그의 약이 암 치료와 관련 없다고 답했던 것이다. 보건소는 그가 의료급여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그럴 리가 없다며 격하게 반발하였다. 자신이 처방받은 약은 분명히 암 치료를 위한 것이라고 맞섰다. 몇 차례의 통화와 언쟁이 오고 갔고, 결국 병원 직원의 착오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암 치료를 위해 쓴 약인데도 그렇지 않다고 보건소 직원에게 알린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상처받은 후였다. 그는 직접 대면한 이가 보건소 직원이었기에 그 책임자인 보건소장의 사과를 받고 싶어 했다. 나는 기꺼이 그러겠노라고 했다. 여기까지가 그날 내 책상의 전화기가 울렸던 이유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화난 민원인과의 통화는 여전히 떨린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는 점잖은 사람이었다. 서로 통성명을 마치고, 그는 잔뜩 쌓아두었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요지는 암 치료로 힘든 사람에게 왜 겪지 않아도 될 불편을 겪게 했냐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는 분명히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었다.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하도록 기다렸다.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먼저 정중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당신의 입장이 되어보니 나라도 화가 날 만하다고 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약속했다. 진심이 전해진 것일까. 수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조금은 누그러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통화를 마무리할 즈음 그에게 언제 보건소에 들러 차 한잔하고 가라고 했다. 그는 바로 다음 날 보건소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여전히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듯했다.


이튿날, 우리 둘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맞은 편에는 민원을 요약한 A4 지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하나의 인생이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비록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지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만큼은 잃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너무나 지당해서 공감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 덕분에 이제 화가 많이 가셨다고 했다. 나는 혹여라도 그의 마음속에 노여움이 남아있다면 이 자리에서 모두 털어내길 바란다고 했다. 그게 당신이 암을 이겨내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제 나는 계획에 없던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에게 혹시 최근에 감사할 일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손으로 턱을 괴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안 그래도 보건소 방문 간호사에게 고마운 마음이 컸다는 것이다. 집에 와서 건강 상태도 확인해 주고 말동무도 되어준다고 했다. 마침 그 간호사가 보건소에 있었다. 전화로 잠시 시간이 된다면 와달라고 했다. 그사이에 나는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담당 간호사가 저 문을 열고 들어오면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보세요.” 그는 손사래를 쳤다. 나는 다시 부탁했다. 그는 끝내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부하지도 않았다.


잠시 후 간호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의자에 앉아 있는 그를 보자 환한 표정으로 다가와 손을 맞잡았다. 나는 그를 보며 나지막이 “자, 해보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망설이다가 마침내 “고맙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그것은 내가 그를 본 이후로 가장 밝은 모습이었다. 그는 처음에 화가 나서 전화를 했다. 그다음에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찾아왔다. 결국 감사하며 돌아갔다.


바야흐로 불만의 시대다. 지난 5월 6일 한국개발원(KDI)에서 발표한 ‘한국의 중산층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적 수준을 실제보다 낮게 여긴다고 한다. 이는 고소득층과의 비교에서 비롯된 불만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객관적인 수치로는 잘살게 되었지만, 감사보다는 비교를 택하여 스스로 불행의 굴레에 갇혀버린 것이다.


우리 삶도 시한부 암 환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세네카도 ‘삶이란 건 살아 있는 동안만 중요하다. 우리는 매일 죽음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으며, 우리가 죽음을 늦출 수는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죽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살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 매년 5월이 되면 돌아오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은 공교롭게도 모두 누군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날이다. 푸르름이 되살아나는 이 좋은 계절, 그간 잊고 지낸 감사의 마음도 되살려보면 어떨까.


원문: https://shinseungkeon.com/5%EC%9B%94-%EA%B0%90%EC%82%AC%EC%9D%98-%EB%8B%AC/ | 신승건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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