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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건의 서재 Nov 08. 2024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줘도 될까

국제신문 11월 8일 기고글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던 시절, 저녁 식사를 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기장에 있는 미역국 집이었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가족이 눈에 띄었다. 젊은 부부와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 둘이 앉아 있었지만, 그들 사이에는 대화가 없었다. 그저 각자의 스마트폰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내 아이에게는 스마트폰을 최대한 늦게 주자.’ 시간이 흘러 딸도 초등학생이 되었고, 나는 그때 다짐대로 스마트폰 대신 전화 통화와 문자 기능만 있는 스마트워치를 사용하게 하고 있다.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주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네트워크에 깊이 빠져들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다만, 유튜브를 완전히 금지하지는 않고, 화면이 큰 노트북으로 보게 하며 ‘숙제를 끝낸 후 하루 30분’이라는 규칙을 두고 있다. 딸이 “조금 더 보면 안 돼?”라고 물어볼 때도 있지만, “딱 30분만”이라는 원칙을 지키려고 한다.


딸이 보는 영상에는 산만하고 요란한 편집이 많고, 또래 사이에서 유행하는 은어나 줄임말이 자주 나온다. 그럴 때는 조용히 곁에 가서 “다른 걸 보는 게 어때?”라고 권해보지만, 딸은 “지금은 내가 원하는 대로 보는 시간이잖아”라며 단호하게 대답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듯이, 딸에게도 나름의 취향이 있을 터다. 유튜브를 완전히 막기보다는, 정해진 규칙 안에서 딸이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현재의 목표다.


반면,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네트워크는 더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사람들은 보통 소셜 네트워크에 자신의 가장 특별한 순간들만 올린다. 아이가 그 모습을 그대로 믿고,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초라하게 느끼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딸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들의 이면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소셜 네트워크 사용을 미룰 생각이다.


지금은 딸아이 주변에도 스마트폰이 없는 친구들이 있고, 아직 어린 나이여서 스마트폰 없이 지내는 걸 무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거의 전부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닐 텐데 혼자만 제한을 두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학교에서라도 스마트폰 사용을 함께 조절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최근 국회에서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학생들이 학교에서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 학습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딸이 중학교에 들어갈 때에도 스마트폰 없이 학교생활을 하는 데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학부모로서도 안심이 되고, 아이 역시 학교에서 온전히 친구들과 소통하고 학업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이 법안이 교육 현장에서 잘 자리 잡길 바란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는 2024년부터 일부 중학교에서 ‘디지털 쉼표(pause numérique)’ 정책을 시범 운영 중이다. 학생들은 등교와 함께 스마트폰을 사물함에 보관하고, 하교할 때 돌려받는다. 이 정책을 2025년부터는 모든 초·중학교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영국은 2024년 10월부터 모든 학교에서 학생들의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며, 독일도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이 학습과 사회적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활발히 논의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질문 하나가 남는다. 아이를 스마트폰과 철저히 단절시키는 것이 과연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아이는 평생 아이가 아니고 언젠가는 성인이 되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한다. 오히려 스마트폰 없는 무균실 속에서 자라다가 준비되지 않은 채로 현실과 마주할 때 더 큰 혼란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스마트폰 차단보다는 건강한 사용 습관을 익히도록 돕는 것이 어른에게 주어진 역할인 이유다.


그래서 요즘은 딸과 유튜브를 보며 대화하려고 노력한다. 딸이 좋아하는 채널을 나도 구독하고, 함께 보며 이야깃거리를 만들어간다. “네가 그 채널을 좋아하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아빠도 오늘부터 같은 채널을 구독하고 보려고 해. 같이 보고 뭐가 제일 재미있었는지 주말에 이야기 나눠보자.” 딸이 좋아하는 부분을 들으면서 나와 다른 시각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관심사를 이해하게 된다.


결국 핵심은 아이들에게 스마트폰 사용을 허용할지 말지가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건강한 사용법을 익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자극을 현명하게 다루는 방법을 함께 배우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야기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은 어른의 숙제다. 아이에게 숙제하라고 하기 전에, 부모부터 숙제를 제대로 하는 것이 먼저다. 요즘 딸과 약속한 대로 초등학생 인기 영상을 매일 30분씩 보고 있다. 30분이 3시간인 듯 더디게 흐른다. 하긴, 숙제가 재미있다면 그건 숙제가 아니다.


원문: https://shinseungkeon.com/%EC%95%84%EC%9D%B4%EC%97%90%EA%B2%8C-%EC%8A%A4%EB%A7%88%ED%8A%B8%ED%8F%B0%EC%9D%84-%EC%A4%98%EB%8F%84-%EB%90%A0%EA%B9%8C/ | 신승건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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