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해보기 전과 후의 생각

아이디어와 소요기간

by 옆자리

대기업에서 일하던 시절, 스타트업이란 단어도 몰랐다.

당연히 내가 스타트업 대표를 하게 될 거란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인간은 보지 못한 건 꿈에서도 그릴 수 없듯이.


그런 내가 어느덧 스타트업 판에서 일한지 10년이 넘었고,

내 회사를 창업 해 대표가 된지 7년이 되었다.


이제는 이게 내 인생 같지만 스타트업을 갓 알게 되었던,

대기업을 퇴사한 이후 초기 스타트업에 조인했을 때 즈음의 내 인식을 돌이켜본다.


몇 번의 계란 껍질을 깨 부쉈는지 셀 수 없을 만큼 아득하다.


그리고 처음 얘기하기 좋은.

수많은 껍질들 중 가장 부끄럽기도 한 두 가지.

난 스타트업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었다.


1. 아이디어만 좋으면 되는 거 아냐?

2. 3년 정도 하면 엑싯할 수 있는 거 아냐?


이에 대해 초기 스타트업 멤버로 조인해서 4년간.

내 회사를 만들어서 대표로 7년간 경험한 지금의 내 인식은 이렇다.


1. 스타트업이 생존하고 성공하는데 가장 쓸모없는 게 초기 아이디어다.

2. 3년 만에 회사 성공이 가능하다면. 중학교 3년간 너 뭐 했냐. 몇백억짜리 회사나 하나 만들지.


초기 아이디어가 쓸모없다는 것은 벤 호로위츠, 마크 안데르센, 폴 그레이엄 등 수많은 창업자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VC운영자들이 공통되게 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아이디어가 진짜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초기 아이디어가 시발점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99%의 초기 아이디어는 실패로 끝난다.

진짜 사업은 그 실패들을 겪으며 수집하는 피드백들을 기반으로 수요가 있는 제품으로 발전하면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걸 Product Market Fit이라고 하는데 가볍게 예시를 들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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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 선풍기 팬이 달려서 매년 별도 세척을 할 필요가 없는 에어컨을 만드는 걸 상상해 보자.

분명 수요가 있을 것 같은 좋은 아이디어다.


첫 번째 제품은 강력한 선풍기 팬이 달려있어 에어컨 기계 내부를 청소해 주는 기능을 구현했다.

하지만 팔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선풍기 팬에 의해서 먼지가 외부로 다 나와버리니 집이 엉망이 되어서 그런 것 같다.


두 번째 제품은 먼지 배출을 외부로 할 수 있는 파이프 연결 모듈을 장착했다.

여전히 팔리지 않았다.

외부로 파이프까지 연결해야 하는 건 추가적인 공사가 필요해 너무 번거로운 것 같다.


세 번째 제품은 먼지를 간편하게 모을 수 있는 박스를 부착했다.

그래도 팔리지 않았다.

매 철마다 에어컨 청소를 하는 가정들의 경우 청결도에 예민한 고객들인데. 겨우 선풍기 팬으로 먼지를 청소하는 수준의 기능에 대해서는 미심쩍어하는 것 같았다


네 번째 제품은 내부 기계를 물청소 할 수 있는 자동세척기능을 부착했다.

역시 팔리지 않았다.

자동 물청소 모듈은 너무 거대해서 에어컨의 부피가 2배가 되어버려 디자인적으로 폭망 했다.


네 번째 시도 동안 우리는 아래와 같은 고객 피드백을 모았다.

1. 별도의 공간 오염 없이 세척이 이루어져야 한다

2. 설치가 너무 번거로워도 안된다

3. 우리 고객은 청결도에 민감한 고객들이다. 이들을 만족시킬 만한 수준의 세척기능이 있어야 한다

4. 가전제품은 디자인도 중요하기에 부피가 너무 커져도 안된다


그래서 이 4가지를 한 번에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품을 새롭게 기획했다


다섯 번째 제품은 공기 흡입구에 완벽한 먼지 흡착 기능을 가진 정전기식 집진 필터를 추가했다. 부피도 일반 에어컨에서 겨우 몇 센티 늘어난 정도이고 별도의 설치나 공간 오염도 없었다. 그저 가끔 정전기 필터만 빼내서 세척해 주면 됐다.

하지만 역시 팔리지 않았다.

이미 에어컨은 어느 가정이나 한 대씩은 보유하고 있는 성숙시장이고 강력한 경쟁자들이 많아 굳이 우리 같은 신생 회사의 에어컨을 사려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캐리어 에어컨에서 연락이 왔다.

당신네들 정전기 집진 필터 특허를 캐리어 에어컨에 넘길 생각 없냐고.


그래서 회사는 특허를 넘기기보다는 정전기 필터를 생산해 납품하는 계약을 맺고,

캐리어에 납품을 시작했다. 곧이어 여러 에어컨 회사들에서 거래 요청이 들어왔다.


결국 이 회사는 청결도에 민감한 고객들에게 적합한 에어컨을 생산하는 회사가 아니라,

에어컨 회사들에게 새로운 기능의 제품을 납품하는 B2B 회사가 되었고.


핵심 제품인 정전기 집진 기능을 강화하여 먼지에 민감한 제조공장 내 집진설비,

오염 방지가 필수적인 병원 공기 관리용 장치, 차량 내부용 소형 먼지 집진기를 만드는 회사가 되었다.


핵심역량은 청소에 민감한 고객의 마음을 잘 훔치는 것에서,

최종 제품별로 상이한 사이즈의 집진기 최적화를 가장 잘 하는 설계-공정관리로 변했다.


그렇게 이 회사는 청소할 필요가 없는 에어컨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정전기로 먼지를 모으는 부품을 상징하는 회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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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야기는 대충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본 웃긴 이야기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곳들이다.


하나의 아이디어. 첫 번째 시도로 시장의 수요와 고객의 마음을 얻은 제품?

이 세상에 그런 게 있나...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선 없다.


유튜브의 초기 제품은 동영상 기반 데이팅 앱이었다.

인스타그램의 초기 제품은 사진과 위치정보를 결합한 평가 서비스였다.


에잉 사람들이 데이트보다 그냥 영상 공유하는걸 더 재밌어하네?

에잉 올리라는 장소 리뷰는 안 하고. 사진에 필터만 적용해서 올리네?

하는 고객 반응들을 보고 제품들을 새롭게 만들어 나간 것들이다.



그리고 얘기가 길어졌지만.

두 번째, 3년 정도 하면 엑싯하는거 아니에요? 에 대해선.


앞의 과정을 거치는데만 보통 2~3년이 걸린다.

그리고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이 그 3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진다.

실패에 지쳐 나가떨어지든, 월급 줄 돈이 없어 나가떨어지든.


물론 시류를 잘 타서 재빠르게 고객을 모으고 빠르게 매출과 이익이 발생한 이후,

마침 본인들이 직접 하는 것보다 우리 회사를 인수하는게 좋겠다고 판단하는 대기업이 나타나서 매각을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사업을 시작하는 마음가짐은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뭐 정신일도 하사불성 같은 틀에박힌 소리가 아니라.


아마 '3년 정도 지나면 매각하겠지 뭐' 같은 마음가짐으로는.

버티기가 힘들것이다. 진심으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수용소 안에서 하루 하루를 생존해나가며


누군가는 다시는 이 곳에서 나갈 수 없을 거라며 비관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다음 크리스마스에는 해방될거라 희망했다.


비관론자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병들어가며 스스로의 생을 포기했고.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던 낙관론자들은 크리스마스가 지나자 희망이 무너지며 좌절했다.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묵묵히 버티며 하루 하루를 살아간.

살아 있는게 가능하다면 그저 그렇게 하루씩만 더 살아나간.

살아야 할 의미에 집착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왜 살아야 하는가’를 알고 있었고,

그 의미는 시간이나 외부 조건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7년 전 회사를 창업했던 나를 평가하는 한 마디.

"정말 무식해서 용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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